‘승무원 전용 화장실’…KLM 네덜란드 항공 인종차별 논란[떴다떴다 변비행]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2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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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0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서울로 오는 KLM 855편 화장실에 붙은 ‘승무원 전용 화장실’ 쪽지. 제보자 A씨 제공
이달 10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서울로 오는 KLM 855편 화장실에 붙은 ‘승무원 전용 화장실’ 쪽지. 제보자 A씨 제공
이달 10일 네덜란드 항공사인 KLM 항공기(KL855)에 탑승한 A씨는 화장실을 가려다 당황스런 경험을 합니다. 이코노미석 제일 뒤편 화장실 문에 ‘승무원 전용 화장실’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한글로만 손 글씨로 쓰여 있었습니다.

A씨는 문득 “한글을 읽을 수 있는 건 한국인들일 텐데, 왜 한국어로만 쓰여 있지? 한국인만 이용을 못하게 되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함께 탑승한 지인에게 이를 알리려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KLM 부사무장(승무원)이 다가와 기내 규정에 따라 사진 찍는 행위를 불허한다며 당장 사진을 지우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승객들은 비행기에서 수없이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A씨는 왜 이 사진만 불법인지 의아했습니다. 무엇보다 왜 안내문을 한글로만 적었는지 궁금했습니다. A씨에 따르면 “부사무장이 승무원 전용 화장실을 만든 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으로부터 승무원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A씨는 황당했습니다. 한국어로만 썼다는 건 한국인을 잠재적인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로 가정했다는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A씨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에 노출돼 있는데, 이 상황을 방송을 통해 알리지 않고 단순히 종이로, 그것도 한글로만 적었다는 건 인종 차별에 해당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기내에서의 촬영은 허락 없이 타인의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닌 한 어느 정도 허용이 됩니다. A씨는 문을 찍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다른 항공업계 종사자들 대부분의 의견입니다. KLM 측이 무리하게 사진 촬영을 제한했다고 오해하기 쉬운 상황입니다. 문제될 것이 없다면 사진을 못 찍게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A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KLM이 신종 코로나로부터 고객과 승무원을 지키려는 행동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A씨는 KLM이 한글로 적은 이유에 대해서 진솔한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겁니다. A에 따르면 부사무장은 “(한글로만 적은 것이) 그게 기분이 나쁜가? 그럼 내가 영어로도 써주겠다. 됐느냐?”며 그제야 영어 문구(FOR CREW ONLY)를 펜으로 썼습니다.

A씨는 “왜 한국 사람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게 했는가? 한국 사람만 보균 가능성을 갖고 있나? 이는 명백한 인종 차별”이라고 말했습니다. A씨는 “부사무장이 화장실 문을 잠궜기 때문에 ‘Occupied’(사용 중)로 표시 돼있으며, 영미권 고객은 이를 읽고 들어가지 않기에 영문 표기를 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사진을 보면 Occupied(사용 중)이 아닌 Vacant(비어있음)으로 돼 있습니다.

A씨는 아프리카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KLM을 타고 왔다가, 암스테르담에서 인천으로 환승을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올 때는 이런 일이 전혀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인천으로 오는 KLM 항공편은 거의 만석이었고, 50% 가까이 한국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A씨 주장대로 KLM이 한국인을 잠재적인 신종 코로나 환자들로 본 것 아니냐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KLM 대처가 아쉽고 또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 하다고 말합니다. 한 항공사 기장은 “승무원 전용 화장실을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항공사 직원은 “한국인들이 많이 탄 항공기에서만 이례적으로 저런 행위를 했다는 건 오해를 충분히 살만하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해당 사건을 공식적으로 KLM측에 전달했습니다. KLM은 12일 오후 입장을 밝혔습니다. KLM은 “먼저 승무원 전용 화장실 운영 및 이의 고지와 관련 불편을 느끼신 해당 항공편 KLM 고객님들께 사과드린다”며 “기장 및 사무장의 결정에 따라 때때로 승무원 전용 화장실을 운영하고 있다. 승무원 전용 화장실에 대해 승객분들께 정확한 안내가 필요한 상황이었으나 안내문이 한국어로만 표기됐고 승객분의 통지가 있은 후에 뒤늦게 영문 안내가 추가되었다. 해당 승무원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승객분들이 차별적인 행위로 느끼신 것에 대해 매우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A씨가 주장하는 “왜 한국어로만 종이에 적어 문 앞에 붙였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피해가는 모습입니다. KLM은 “안내문이 한국어로만 표기됐고 승객분의 통지가 있은 후에 뒤늦게 영문 안내가 추가됐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본보가 A씨가 당시 승무원과 나눴던 대화 음성을 확인해보니 “승무원은 그냥 (한글로만 적을 때는) 잊어버렸다. 건강을 위한 조치였다. 우리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그게 전부다” 등으로 항변했습니다. ‘늦게 공지를 했다’는 KLM측의 말과는 사뭇 다른 부분이기도 합니다. 취재 상황을 종합해보면 ‘늦게 공지를 한 것’이라기보다는 ‘승객의 문제 제기에 따른 추가 공지’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전히 왜 한국어로만 썼는지에 대한 A씨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답이 없습니다.

항공사 취재를 하다보면 한국인들이 종종 외국 항공사로부터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사례를 보게 됩니다. 기분 나빠도 참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항변해도 ‘미안하다’는 한 마디 듣기도 어렵고, 사과를 정식으로 받는 경우도 드뭅니다. 한 승객은 어쩌면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추억을 갖게 됐음에도 말이죠.

‘여행의 기쁨을 항공사와 함께 하자’는 것이 모든 항공사들이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하지만, 일부 승무원들의 행동들이 간혹 누군가의 여행을 망치곤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KLM은 세계적인 항공사입니다.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올해 여름 항공업계의 UN이라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총회의 호스트 항공사로 선정될 정도입니다(지난해 IATA는 서울에서 열렸고 대한항공이 호스트였습니다). KLM은 이번 사건에 대해 내부 조사를 진행하고, 재발 방지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어떤 조사 결과가 나올지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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