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가 보는 미래사회]재교육→재취업 틀 탄탄하면… 경륜 많은 고령자, 부담 아닌 축복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2〉서용석 교수 ‘長生시대의 조건’

고령화에 따라 나이가 들어도 경제 활동에 참여하며 생산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은퇴와 정년의 개념도 달라질 것이다. 지난해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만 60세 이상 ‘시니어 패셔니스타’ 선발 대회 장면. 동아일보DB
고령화에 따라 나이가 들어도 경제 활동에 참여하며 생산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은퇴와 정년의 개념도 달라질 것이다. 지난해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만 60세 이상 ‘시니어 패셔니스타’ 선발 대회 장면. 동아일보DB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나는 앞으로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2018년 기준으로 82.7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80∼90세까지 무탈하게 살다가 가는 인생을 예상하며 각자의 계획을 세울 것이다. 그런데 평균수명이 100세, 110세를 넘는다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까지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건강하기만 하다면 오래 산다는 것은 개인에게 축복일 수 있으나, 사회 전체로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훨씬 큰 것 같다. 아마도 부양해야 할 사람보다 부양받을 사람이 더 많아지는 부담감 때문일 것이다. 오래 살기만 하고 건강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노화(老化)’라는 단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체적 기능과 활동능력이 쇠퇴하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의학기술의 도움으로 나이가 들어도 젊을 때의 정신과 신체적 기능을 유지하는 ‘신인류’가 많아지고 있다. 이들 신고령층에게 ‘노령(老齡)’ 대신 ‘장생(長生)’이라는 긍정적 개념을 부여하면 어떨까. 필자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고령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노령화(老齡化)가 아닌 ‘장생화(長生化)’란 개념 도입이 시급하다고 본다. 활동적이고 다양한 경륜을 가진 많은 장생자들이 경제사회활동에 참여한다면 고령화는 우리에게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다.

○ 과학기술이 견인하는 장생시대

산업혁명 이후 과학기술의 혜택으로 인간의 평균수명은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최대수명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노화학자들은 아무리 의학이 발전하더라도 인간이 최대한 살 수 있는 연령을 120세 정도로 보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가 그렇게 프로그래밍돼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몇 살까지 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젊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의학기술의 발달은 실제로 젊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점점 높여가고 있다. 노인 질병사망의 주요 원인인 암과 치매의 정복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암과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맞춤형 백신과 치료제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노화로 쇠퇴한 치아나 뼈, 피부, 혈액, 장기 등을 교체하는 임플란트 기술도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신체의 일부가 노화되면 새것으로 교체하면 되는 것이다.

인간의 뇌를 기계로 자극해서 노인의 기억과 판단력, 언어능력을 강화하고 정서까지 조절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최근에는 고령자의 혈액세포를 ‘역분화줄기세포’로 바꿔 세포수명을 신생아 상태로 되돌리는 실험까지 성공했다. 특히 유전자 교정과 줄기세포를 활용해 노화 자체를 억제하는 연구는 장생시대를 견인할 중요한 기술로 평가되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현재 예상하는 기대수명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 ‘나이’의 굴레에서 해방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65세 이상 고령자라는 등식은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다. 고령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을 받거나 활동이 제약되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생물학적 연령이 무의미해진 장생시대에 우리는 어떠한 변화를 경험할 것이며, 또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장생시대는 개인의 가치관을 필두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공부하고, 일하고, 은퇴하는 단선적인 삶을 살아왔다. 생애주기 또한 출생, 성장, 교육, 취직, 결혼 및 출산, 은퇴, 사망에 이르는 선형적인 과정을 겪어왔다. 그러나 장생시대에는 교육, 취직, 결혼 및 출산, 은퇴라는 생애주기가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반복되는 순환적인 과정으로 변할 것이다.

장생시대의 도래로 결혼과 가족의 의미가 기존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재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수도 있다. 경제적인 능력만 된다면 100세가 넘어서도 출산과 양육이 가능해져 ‘족보가 꼬일’ 수도 있다. 결국 전통적인 가족제도는 커다란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100년을 넘게 사는 장생시대에 고등교육을 포함한 16년의 교육기간은 충분하지 않다. 장생시대에는 평생교육을 넘어 일정 기간 동안의 주기적인 집중 교육과 학습이 일반화될 것이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20대 중후반에 처음 취직을 하고 60세 전후에 은퇴를 하는 시스템은 유효하지 않다. 일정 기간의 집중적인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직종과 직장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한 직장에서 35년 일하고 40년 연금을 받는 것도 장생시대에는 용납되기 어려운 구조다.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연금이라는 제도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연령대별로 패턴이 정해져 있는 여가와 소비문화에도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고령자라 해서 운전면허를 반납할 필요도 없고, 높은 보험료를 낼 필요도 없다.

○ 장생시대를 맞이할 준비는?

얼마 전 네덜란드에서 69세 남성이 ‘법적 연령을 20세 낮추어 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나이보다 젊고 건강하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하지만 그는 이름도 젠더도 바꿀 수 있는 세상인데 왜 나이는 바꿀 수 없는지 항변했다고 한다. 그는 나이 때문에 취업과 데이팅 사이트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며, 법적 연령을 낮출 수만 있다면 노인연금도 포기할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장생시대에는 유사한 소송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장생시대는 다양한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결혼, 가족, 교육, 직업과 일, 연금과 보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고령화로 인한 경제사회적 위기에 대한 두려움은 존재하나, 장생사회로 인한 사회적 변화를 준비하는 시각은 아직 부족하다.

장생시대에 우리 사회가 성공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과 노력이 필요할까? 현재 우리 법제도와 경제사회 시스템은 젊은 현역세대가 은퇴한 노년세대를 부양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이러한 구조로는 인구감소와 고령화 시대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없다. 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시대를 전제로 해 모든 사회구성원이 활약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래 사는 것보다 오래 생산적인 삶을 유지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경제사회활동에 계속 참여하는 삶을 살도록 정책 목표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개개인의 오래 사는 축복들이 모여서 엄청난 사회적 부담으로 바뀌는 비극을 피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연령에 따른 차별도 없애야 한다. 은퇴와 정년의 개념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고령이라도 건강하고 역량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경제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와 제도적 기반이 조성돼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전환 과정에서 많은 사회적 충돌과 갈등이 야기될 것이다. 이에 대비한 선제적 갈등관리에 대한 노력도 필요하다.

2040년에는 70세 이상만 참가하는 트로트가수 선발대회가 국민적 인기를 얻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서도 외모와 목소리, 기교에서 후배 가수들에 못지않은 장생 가수들의 향연이 기대된다.

장생시대는 이미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장생시대로의 성공적인 전환은 고령화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준비 없는 장생시대의 도래는 또 다른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장생의 기술적 혜택이 일부 특정 계층에게만 쏠린다면, 우리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양극화를 경험할 수도 있다. 장생시대가 디스토피아가 될지, 유토피아가 될지는 우리가 어떤 결정과 행동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미국 하와이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마치고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0년 3월부터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의 겸임교수로 중앙부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미래 전략’을 강의하고 있다. 기술 진보와 인구구조 변화가 가져올 미래 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거버넌스를 연구 중이다.
#고령자#재취업#미래사회#장생시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