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기후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첫 조사 나선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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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청, 용역 발주… 대책마련 방침
“생활수칙 등 정신건강 예방법 구축”
“태풍 피해, 포격 수준 공포” 연구도

심각한 폭염이나 한파, 가뭄 등 일명 ‘극한기후’가 국민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정부가 처음으로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전 세계에서 지구 온난화가 이상 기후와 재난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도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12일 동아일보 취재에 따르면 질병관리청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질병청은 10월까지 조사를 마친 후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극한기후란 평년에 비해 현저히 심한 정도의 이상기후를 뜻한다. 예년보다 너무 잦은 태풍, 평년 강수량을 훨씬 뛰어넘는 폭우 등이 이에 해당된다.

국내도 극한기후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115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13명이 사망하고 1300여 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기상청에 따르면 현재 수도권의 폭염 일수(하루 최고 기온 33도 이상인 날짜 수)가 연평균 7.8일이지만 2041∼2060년에는 34.3일, 2081∼2100년에는 86.4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극한기후는 전쟁에 버금가는 정신적 충격을 주기도 한다. 한림대 연구팀에 따르면 2006년 태풍 에위니아로 피해를 입은 수재민 148명은 연평도 포격(2010년) 피해 주민들이 겪은 수준의 공포감과 무력감을 겪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극한기후가 미치는 피해를 사망, 부상 등의 인명 피해나 재산 피해로만 집계해 왔다.

반면 미국 호주 등은 극한기후가 정신 건강에 끼치는 악영향을 조사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해 “홍수와 폭염 등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유발할 수 있고, 특히 폭염은 불안과 급성 스트레스, 자살률 증가와도 관련이 있다”고 발표했다.

극한기후 현상을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기후변화에 대한 걱정과 불안 때문에 무력감, 우울감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기후변화에 대해 만성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상태를 미국은 2017년 ‘환경불안(Eco-anxiety)’이라고 규정했다.

채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에서도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한 만큼 기후변화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지난해 6월 “기후변화에 대응할 정신 건강 관리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질병청 관계자는 “폭염이 발생하면 신체 건강 수칙을 안내하듯 정신 건강 분야에서도 극한기후에 따른 생활 수칙과 예방법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극한기후#정신건강#폭염#한파#가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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