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베트 지음 유영미 옮김
160쪽 1만8000원 해냄
나뭇가지 위에 녹아 흐르듯 걸려있는 시계, 나부(裸婦)를 타고 오르는 개미 떼만 ‘초현실’인가.
열대의 카카오와 바다 속의 가재가 접시 위에서 만나 얌전히 누워있는 모습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초현실적 풍경 아닌가. 달리의 그림과 이베리아 반도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만들어진 요리가 한 책의 양쪽 페이지를 나란히 채운다면 그건 또 어떤가.
“내 안에는 천재가 살고 있다. 그는 내게 먹는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라고 한다. 나는 이 ‘거룩한 판결’에 기꺼이 복종한다. 모든 것은 입에서 시작해, 신경을 거쳐 몸에 이른다.”
‘20세기의 가장 광기적 화가’로 불리는 초현실주의 회화의 천재 달리. 인용문에서처럼 그는 평생 미각을 통해 영감을 얻었고, 시각에서 발휘된 상상력을 혀 끝으로 맛보려 했다.
30년 동안 달리를 연구해온 저자는 달리가 일생 즐겼던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향토음식과 유럽 각지의 요리를 컬러 화보로 소개하면서, 화가의 일화를 덧붙여 그 상상력의 원천을 추적한다. 달리의 비서로 부인 갈라 다음으로 그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모레의 회상.
“그는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커피는 턱에서 목을 지나 가슴팍으로 흘렀고, 천천히 마르면서 피부에 엉겨붙었다. 달리는 그 딱지를 관능적으로 긁었다. 파리들이 날아와 앉았다. ‘황금을 선적하는 날이겠는걸’ 달리는 화장실 꽃병에 꽂혀 있던 자스민 봉오리 하나를 귀에 꽂고 돌아왔다….”
커피를 흘리기 전 달리의 아침식사는 무엇이었을까? 모레는 ‘캡드크루 지방의 성게요리가 그것’이라고 말한다. 가시의 질감이 산새의 둥지처럼 살아있는 성게요리의 사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물이 식탁위로 튀어올라 셔츠를 적실 것만 같다….
◇음식에 관한 달리의 어록
◆굶을지언정 아무거나 먹을 수 없다.
◆내가 씹고 있는 안쵸비는 나를 밝혀주는 등불이다.
◆나는 그토록 먹고 싶은 과일을 한 입 베물고, 나를 유혹했던 그것을 내던져버린다. 순간적으로 향유하기 위해.
◆피는 꿀보다 달다.
◆나는 형태가 분명한 것만 먹고 싶다. 시금치를 먹느니 거기 묻은 모래를 먹겠다.
◆프라이팬 없이 떠다니는 달걀 프라이의 형상은 일생 환각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삶에서 경험한 모든 혼란과 흥분, 그 저변에 달걀 프라이의 환각이 있었다.
◆나는 갈빗대를 좋아하고 나의 아내도 좋아한다. 그러니 그 둘을 함께 그리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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