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영화사의 보도 자료를 보니 이 강아지와 뱀이 촬영 뒤 모두 죽었다는군요. ‘과로사’했다나요. 이 자료에는 ‘목숨 바친 동물의 완벽 연기’라는 제목과 함께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가문의 영광’을 위해 열혈투혼을 불태운 동물들, 그들이 진정 ‘가문의 영광’, ‘가축의 영광’이다”.
이 보도자료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서글픈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영화 촬영장에서 동물들이 알게 모르게 죽기도 합니다. 가령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선 주인공이 고등어를 낚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물어보니 이 고등어도 촬영 뒤에 죽었다네요.
개봉을 앞둔 영화 ‘YMCA 야구단’에는 천연기념물인 학이 한 마리 등장합니다. 주인공 송강호가 학의 뒤를 따라가는 코믹한 장면인데요, 혹시 이 학도? 하는 생각에 영화사에 물어봤지요. 다행히 학은 귀한 동물이라 출연 ‘섭외’가 불가능해 동물원에서 걸어가는 모습을 찍은 뒤 컴퓨터그래픽으로 송강호 촬영 장면과 합성했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 불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영될 때 도입부가 생각나네요. “촬영 과정에서 동물에 대한 학대는 없었다”는 영문 자막을 나왔던 것이죠.이 영화에는 ‘개 잡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행여 관객들이 실제 상황으로 여길까봐 걱정돼 넣은 거랍니다.
김감독이 이런 자막을 넣게 된 계기는 이전 베니스 영화제 진출작인 ‘섬’ 때문입니다. ‘섬’에는 회를 뜬 물고기를 다시 물에 집어 넣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물고기에 대해 동물학대 문제를 제기한 평론가와 관객들이 많았다는군요.
영국의 영화 평론가 토니 레인즈는 “유럽에서는 촬영시 동물이 죽거나 학대당한 사실이 알려지면 영화 상영조차 힘든 경우도 있다”고 김감독에게 충고했다는군요.
하긴, 열악한 상황에서 영화 촬영을 하다보면 개나 뱀한테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겠지요. 하지만 동물도 생명인데 촬영 뒤 죽은 사실마저 영화의 홍보거리로 삼는 모습은 서글플 따름입니다.
‘영화의 영광’을 위해 죽어간 모든 동물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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