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엽기 미스터리이지만 당시 형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편의 부조리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적 장르인 스릴러와 농촌의 투박한 느낌을 충돌시키면 흥미롭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심각한 스릴러가 아니라 ‘‘전원일기’가 ‘세븐’을 만났을 때’라고 해야 되나, 일종의 ‘농촌 스릴러’죠.”
실제 사건이라 다루기 조심스럽지만, 실제 상황이 더 코미디 같아서 되레 묘사를 자제해야 할 형편이었다고 한다. 당시 형사들은 북향으로 나 있는 경찰서 정문을 옮기면 범인이 잡힐 것이라는 점쟁이의 말을 믿고 정문을 동쪽으로 옮겼지만 사건은 또 일어났다. 서해 바다에서 목욕재개하고 치성을 드리면 범인이 보일 거라는 점쟁이의 말대로 정월 그믐날 서해안에 갔다가 육군 초병에게 들켜 창피를 당한 일도 있었다.
“다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절박한 행동이 남들에겐 코믹하게 비쳐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 묘사가 많아서 영화에도 우스운 장면들이 좀 많은데, ‘그들이 왜 패배했을까’하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다보면 당시의 시대상과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이 열리고, 5공화국이 붕괴하기 직전 시위로 나라가 들끓어 대부분의 경찰조직과 공권력이 시위 진압에 투입되던 시기에 잇따라 일어났다.
“사건이 터지면 시골길에 전경들이 깔리지만 한 달쯤 지나면 전경들은 다시 시위진압을 하러 가고, 그럼 또 사건이 터지고 그랬어요. 전경들을 시골길에 세워둘 여유가 없었던 거죠.”
체제의 존속과 관련된 큰 사건이 개인의 목숨이 달린 작은 사건을 압도했던 시대, 모든 책임은 시골의 형사들이 져야 했고 “당시 형사들에게 그 사건은 지금도 암 덩어리처럼 남아있다”고 한다.
“결국 시골구석의 여인네들을 지켜줄 만한 국가의 의지와 역량, 연쇄살인범과 대결하기 위해 필요한 치밀한 시스템이 부족했던 당시의 시대상이 이 사건이 영구미제로 남게 된 근본적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80년대를 다룬 대부분의 영화들이 복고풍과 향수어린 회고조에 머물러있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80년대를 정면에서 바라보는 시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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