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동안 인간이 저지른 가장 어리석은 짓들/Think the Earth Project 엮음/240쪽 1만2000원 나무심는사람
누구나 자기 자식은 예쁘다고 한다. 자식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릴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도 우리 자식과 그들의 자식들이 살아갈 토양과 대기, 물에 독을 푼다. 내 자식에게 되돌아올 수 있는 증오의 씨앗을 남의 자식들 가슴에 심고, 후손들이 누려야 할 자원을 탐욕스럽게 소진한다. 우리는 우리 세대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인 것이다.
생태계와 경제의 조화로운 공존을 목적으로 2001년 설립된 국제적 비영리법인 ‘Think the Earth’는 이 책에서 100장의 사진으로 20세기 인류의 무모함을 고발한다. 유조선 좌초로 엉망이 된 바다, 폐기물로 오염된 호수, 기형 물고기, 질식할 듯한 도시의 대기오염이 각 페이지를 채운다.
‘이 사진들은 인류가 지구와 자기 자신에게 저지른 수많은 어리석음의 상징인 동시에 하나하나가 명백한 현실’이라고 편집자는 책머리에서 밝힌다. 산성비로 말라죽는 나뭇잎, 산더미처럼 쌓인 폐 자동차와 목재가 눈을 찌른다. 인간의 탐욕으로 살육당한 종(種)의 사진은 포유류와 조류, 어류, 마침내는 인간 자신에 이르기까지 끝이 없다.
사진 사이사이에는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 등의 환경과 공존에 대한 명상적인 글이 삽입된다.
레비스트로스는 말한다. “지금까지 인간은 자신을 일반적 생명체와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른 생명체의 고유함과 그들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인권’을 ‘생명권’으로 다시 정의할 때 비로소 우리 행성이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결정할 수 있다는 권고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조안 엘리자베스 록 지음 조응주 옮김/376쪽 1만2000원 민들레
혐오스러운 사람이 있으면 ‘벌레 같은 놈’이라고 말한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된 모습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갈수록 벌레 모습과 흡사해진다.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찐득거리는 진액을 흩뿌리기 마련이다. 언제부터 인간이 벌레 앞에서 이렇듯 ‘벌레 씹은’ 표정을 짓게 되었던가?
심리학자들의 말을 빌려, 저자는 ‘역겨운 벌레란 우리 머릿속에 있다’고 말한다. 유대인을, 집시를, 소수 종교집단을 박해해 온 인간의 심층 심리의식이 해충이라는 ‘적’까지 공들여 만들어냈다는 분석이다. 나름대로 저마다 열심히 살아가는 곤충들을 인간들은 ‘해충’과 ‘익충’으로 갈라왔다. 평등하게 창조된 피조물을 ‘정복자’ 인간의 기준에 맞춰 얼마든지 재단할 수 있다고 믿어 온 오만함의 표현이다.
모기가 다가오면 팔을 내밀 정도로 곤충 애호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잘 알려진 ‘해충’들의 변호를 기꺼이 자임한다. 가장 미움을 받아온 파리부터 살펴보자. 파리 몸에 붙어있는 미생물은 대부분 그 지역의 사람 몸에 있는 미생물과 동일하다. 그런데도 보건당국은 지역의 전체적인 위생상태를 개선하기보다 살충제를 뿌려대는 일에 더 열심이다. 더 손쉽고 비용이 덜 들며 전시행정 효과가 높고 특히 지역민을 덜 귀찮게 하기 때문이다.
바퀴벌레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바퀴벌레를 샅샅이 ‘취조’한 결과 병원균 전파의 혐의가 크지 않자 인간들은 ‘알레르기 주범’이라는 새 혐의를 덮어씌웠다. 그러나 바퀴벌레로 인한 알레르기는 화학물질의 범람으로 인한 알레르기에 비하면 극히 적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이해해 준다고 해도, 내 아이가 모기에 물려 퉁퉁 부은 모습만큼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이 모기 앞에서조차 할 말이 없다고 항변한다. “모기 중 인간의 피를 선호하는 종류가 주종을 이룬 것은 불과 2세기 전부터다. 야생 동식물이 감소하고 산림이 줄어든 대신 인간의 개체 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 곤충 종에 대한 박멸작업은 대대적인 자연의 반격을 불러 온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불개미에 대한 방제작업이 벌어졌지만 살충제 내성을 가진 불개미가 남부 전역으로 퍼지는 결과를 불러왔다. 그러나 반드시 인간에게 재앙만은 아니었다. 불개미가 목화바구미의 번식을 억제시켜 목화밭을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보며 곤충학자들은 조금씩 ‘철’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자연을 대하는 인간 전체의 시선은 아직도 완전히 철들지 않았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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