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人3色]외국 ‘공항소설’과 한국 ‘휴게소소설’의 차이

  • 입력 2005년 6월 11일 0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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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소설’이라는 장르가 있다. 스티븐 킹, 시드니 셸던, 앤 라이스, 파울루 코엘류, 댄 브라운 등이 이 공항 소설계의 거장이다. 이들은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태국 방콕 돈무앙공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공항의 서점에다가 신작을 비치할 수 있는 작가들이다. 대부분의 공항 서점은 소규모인데, 그 까닭은 이들과 같은 공항 소설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몇 안 되기 때문이다.

공항 소설의 장르적 특징은 최대 12시간에 이르는 장거리 비행에 견딜 수 있는 흥미와 두께를 동시에 지녀야만 한다는 점이다. 이것만 해도 어려운데, 또 한편으로는 지역에 구애받지 않는 이야기여야만 한다는 점.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비행기에서도, 모나코로 가는 비행기에서도 읽을 수 있어야만 한다. 작가라면 이런 소설을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하지만 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짭짤한 수입을 보장하는지 알 것이다.

공항 소설의 반대편에는 ‘휴게소 소설’이라는 게 있다. 어감도 비슷하고 그 대표 작가들도 킹, 셸던, 코엘류 등이니 두 장르를 혼동할 수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이들의 작품은 한때 대관령 휴게소에서 금강 휴게소에 이르기까지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의 한 귀퉁이 좌판에서 할인 판매된 적이 있었다. 킹이나 셸던이 한국만의 독특한 장르인 휴게소 소설의 대표 작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적잖이 당황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휴게소는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무덤이기 때문이다.

휴게소 소설의 장르적 특징은 외국 작가의 명성만 믿고 계약했다가 실패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점이다. 외형적 특징으로는 책 표지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라는 광고 문구가 인쇄돼 있고, 책을 살짝 들어보면 아래쪽에 빨간 칠을 해놓았다는 것. 이는 제아무리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라도 한국에서만은 무게 단위로 팔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아마도 그 소설들을 펴낸 출판사도 그렇게 폐지 값으로 팔려나갔을 것이다.

이처럼 휴게소에서 헐값에 팔리던 책 중에 알랭 드 보통의 대중철학서도 있었다. 킹을 공항 소설가라고 할 수 있다면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등을 펴낸 드 보통은 공항 철학자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어디에서나 그의 산문에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10년 전에는 인기가 없다가 지금 와서 갑자기 드 보통이 각광을 받는 것일까? 아마도 10년 전, 우리에게는 드 보통의 산문을 읽을 수 있는 독법 자체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유독 한국에서만 공항 소설이 무게 단위로 팔려나간 까닭도 여기에 있다.

드 보통의 문장을 자기 나름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외국적 상황으로 여겼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안과 밖을 나눠서 읽었다는 뜻이 된다. 지금은 앞에서 말한 공항 소설뿐만 아니라 좋은 외국 소설이 많이 읽히고 있어 한국 소설 위기론까지 나올 정도다. 한국 작가로서는 휴게소 소설이 있던 시절이 그리울 만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안과 밖을 나누지 않고 흥미로운 소설들을 찾아 나서는 독자들은 결국 한국 소설을 변화시킬 테니. 좋은 소설은 먼저 그런 한국 독자들에게, 그 다음에는 다른 나라의 독자들에게 읽힐 것이다. 순애보의 시절은 끝났다. 안과 밖의 경계는 사라졌다. 이게 바로 지금 한국 소설이 놓인 상황이다.

김연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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