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생명체 활동에 없어선 안 될 존재다. 단세포 생물부터 약 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인간까지 예외가 없다. 35억 년 전 원시바다에 있던 호기성 원핵생물도 물과 이산화탄소로 광합성의 재료를 얻었다. 호기성 원핵생물은 현재 생명체의 모든 세포 속에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의 조상 격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물이 없으면 생물이 생겨날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물의 여러 가지 특성을 살펴보면 물은 생명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생명체가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은 암모니아 다음으로 비열이 큰 물질이다. 물의 온도를 올리는 데는 높은 열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외부 온도가 변하더라도 물은 쉽게 온도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물이 주 성분인 생물체도 외부 온도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도 그것의 영향을 덜 받고 일정한 체온을 유지한다. 생명 유지의 기본은 ‘항상성(恒常性)’이다. 외부 환경에 변화가 있을지라도 체내 조건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생물체가 금속이나 돌로 이뤄졌다면 체온은 아주 쉽게 오르락내리락할 뻔했다. 이래서는 큰일 난다.
생명체의 체온 조절에도 물이 중요하다. 물 1g을 수증기로 바꾸는 데는 약 500cal의 기화열이 필요한데, 더울 때 적은 땀(물)이 증발하면서 많은 열을 빼앗아 가므로 체온을 쉽게 내릴 수 있다. 한더위에 바깥일을 하는 사람과 사막 한가운데 깊은 뿌리를 박은 선인장이 기화열 덕분에 견딜 수 있다.
물의 비중이 섭씨 4도에서 가장 무거운 것도 의미가 크다. 대부분의 물질은 온도가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무거워지지만 물은 4도에서 가장 무거워졌다가 온도가 더 떨어지면 도리어 가벼워진다. 그래서 물이 0도에서 얼어 얼음이 되면 가벼워지면서 물 위로 떠오르게 된다. 물이 표면부터 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얼음이 물보다 무거웠다면 호수나 강바닥이 죄다 얼어붙을 뻔했다. 그렇게 되면 수중생물인 물고기와 조개가 살지 못한다.
물은 다른 어느 액체보다도 점도가 낮다. 물이 끈적끈적하고 걸쭉했다면, 어떻게 물이 주성분인 피가 모세혈관 속을 흐르며, 푸나무의 물관에 물이 지나갈 수가 있겠는가. 건강하려면 물을 많이 마시라고 한다. 그것은 피의 점도를 낮춰 잘 흐르게 하기 위함이다.
어느 용매(溶媒)보다 소금을 잘 녹이는 것도 생명체에게 중요하다. 소금은 세포막의 대사에서부터 신경에서 일어나는 흥분 전달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22일은 ‘물의 날’이었다. “물이나 공기처럼 흔한 것은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물이 귀해져 더는 헤프게 ‘물 쓰듯’ 할 수 없게 되었다. 지구에 있는 물 가운데 민물(담수)은 고작 2.5%(나머지는 바닷물)에 지나지 않고 그것도 빙하나 지하수로 묶여 있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물은 0.0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어머니 자궁의 양수(羊水) 속에서 열 달 동안 살았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얼마나 많이 물의 신세를 지는지 모른다. 또 종교와 물이 왜 그렇게도 야무진 끈을 맺는지도 짐작이 간다. 더없이 성스럽고 고마운 물이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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