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5공 정권은 장애인 등 무차별적으로 1152명을 강제징집했고 이중 921명을 포함해 모두 1192명에게는 사상개조라는 명목의 녹화사업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 목사)가 13일 발표한 강제징집·녹화사업 진상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과거사위는 두 사건 모두 5공 정권 당시 국방부와 내무부, 문교부, 정보기관 등 정부차원서 저지른 위법행위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해야 하고 '민주화운동 관련자' 심의대상이 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적극 나서도록 권고했다.
조사 결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강제징집을 지시 승인했다는 사실이 관련 문서에서 드러났다.
5공 정권은 1980년 9월부터 1984년 11월까지 4년 2개월간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제적, 정학, 휴학 등 특수 학적 변동자와 운동권 출신 정상 입대자, 민간인 등 1152명을 강제징집했다.
이 가운데 921명은 사상개조 및 학원 프락치로 이용할 목적으로 실시된 녹화사업에 참여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1981년 12월 신체조건 및 신체검사 절차를 무시하고 강제징집토록 한 '소요 관련 대학생 특별조치 방침'이 시달된 후에는 한쪽 눈의 시력을 상실한 성균관대 남모 씨, 소아바미 장애가 있던 서울대 이모 씨 등 현역입영 대상이 아닌 사람들도 징집됐다.
강제징집돼 숨진 성균관대 이윤성 씨는 2대 독자이고 연세대 정성희 씨는 만19세 이하로 입영대상이 아니었음에도 강제로 끌려갔다.
강제징집은 80년 77명, 81년 230명, 82년 371명, 83년 461명으로 계속 늘다가 84년에는 13명으로 급감했다. 서울대가 254명으로 가장 많고 고려대 165명, 성균관대 105명, 경북대 37명, 전남대 29명, 강원대 28명 순이었다.
강제징집자 가운데 녹화사업에 동원된 인원은 서울대 199명, 고려대 137명, 성균관대 79명, 경북대 30명, 강원대 24명, 전남대 15명 등이다.
당시 강제징집은 주로 △경찰 등 수사기관에 연행된 후 △강제휴학(지도휴학) 뒤 △검찰에서 석방되거나 재판받은 직후에 이뤄졌거나 △집단적 강제 징집 등이 있었다.
1981년 무림사건, 야학연합회(동학회) 사건(11명), 학림사건(24명), 고려대 문무대사건(109명), 연세대 교내시위(15명), 1982년 종로 연합가두시위(20명)에 연루된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강제징집된 경우다.
1982년 9월부터 1984년 12월까지 이른바 '군내 좌경 오염 방지' 명목으로 실시된 녹화사업에는 1192명이 동원됐다.
강제징집자 921명과 정상 입대자 247명, 민간인 24명 등이 녹화사업에 동원돼 학원 프락치 활동이 강제됐다.
당시 보안사는 구타 등 가혹행위로 방어권리가 무시당한 상황에서 이들에게 강압적인 방법으로 자필진술서나 반성문을 작성하도록 해 이를 '개인별 심사자료'로 관리해왔다.
그동안 소각된 것으로 알려졌던 이 자료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개인신원과 서클 선후배 명단, 시위참가 경험, 프락치 활동사항까지 자세히 기록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녹화사업에 동원된 학생들은 동료를 배신해야 한다는 정신적인 폐혜와 함께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과거사위는 설명했다.
교내 서클활동으로 강제징집된 고려대 출신 김모 씨는 과거사위 조사위원과 면담에서 "처음 2일간 잠을 재우지 않은 상태에서 손가락 사이에 볼펜을 끼우고 누르는 방법으로 고문을 했다.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자 입속에 수건을 집어넣었다"고 진술했다.
사망자 6명(정성희, 이윤성, 김두황, 현영현, 최온순, 한희철) 중 한 씨를 제외한 5명은 강제로 끌려왔고 녹화사업에 동원된 이 씨는 보안부대 영내에서, 한 씨는 자대 복귀 뒤 각각 자살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상적으로 군에 입대했다가 녹화사업에 동원된 이상석 씨는 전역했으나 전역일 다음 날 해군본부에서 전역명령을 취소했고 보안부대에 구속됐다.
이 씨는 민간인 신분인데도 군법회의 재판에서 군사기밀 누설죄로 징역 1년을 구형받았고 이등병으로 강등돼 다시 전역하는 비운을 겪었다.
과거사위는 "현역으로 징집될 수 없는 학생들을 입대시킨 경우, 복무기간이 만료된 상황에서 군사재판에 회부된 경우에 대해서는 국방부의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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