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카트리나는 분명히 자연재해다. 그러나 참사를 몇 배나 키운 것은 인간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 각종 사례와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이번 참사를 ‘인재’로 규정했다. 환경역사학자 테오도르 스타인버그는 “굳이 허리케인이 아니더라도 뉴올리언스는 자연재앙에 가장 취약한 곳”이라고 말했다. 뉴올리언스 인근 해안환경이 심각하게 파괴됐기 때문이다. (중략) 습지는 그 자체로 중요한 방파제다. 제프릿 마운트 캘리포니아대 지질학과 교수는 “5km²의 습지가 훼손될 때마다 태풍으로 인한 파고는 0.6m씩 올라간다”고 분석했다. 결국 인간이 재앙을 자초했다는 결론이다. 로저 필케(콜로라도대) 교수는 “만약 1926년의 마이애미를 덮친 규모의 허리케인이 오늘날 재발한다면 당시보다 90배나 많은 피해를 보게 된다”고 추산했다. 뉴올리언스의 대재앙을 낳은 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굳이 무너지지 않았더라도 둑은 그 자체로 재앙의 원인이었다.(중략)
물론 지구 온난화도 큰 원인이다. 허리케인이 발생하는 건수는 늘어나지 않았지만 70년대에 비해 허리케인의 강도가 3배로 늘었다. 태풍 역시 2배로 강해졌다. 허리케인은 물론 태풍 피해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B. 어떻든 지구온난화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환경문제에 대하여 너무 감정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득과 실을 꼼꼼히 따져가며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보아 환경문제에 대하여 낙관론자들이라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환경오염이 심한 곳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직 환경문제가 걱정할 정도로 심한 지경을 아니며, 설령 심하다고 하더라도 우리 인류의 기술과 제도로 얼마든지 해결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이들은 말한다.
C. ‘무엇보다도 지구를!’의 의장이며 심층생태학의 공인된 충복인 데이비드 포맨은 제3세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생태적인’ 의견을 제기하였다. “우리가 에티오피아에 할 수 있는 가장 사악한 것이 원조라면, 가장 선한 일은 자연이 균형을 추구하도록 순응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곳의 사람들이 굶어 죽도록 놔두라고 말할 때마다, …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유일한 대안으로 반쯤 죽어가는 아이들을 구한다. 그 아이들은 전 생애를 살지도 못할 게 빤한데도 말이다. 향후 10년 내에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에티오피아의 발전이 좌절될 것이란 점과 두 배 이상의 인구가 고통 받고 죽어갈 것이란 점이다.”
위 사례들은 생태계와 관련한 사태와 이에 대한 여러 견해를 보여 준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의 제시문들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Ⅰ. <제시문 1>과 <제시문 2>의 견해를 각각 정리하고, 둘 모두를 활용하여 위의 사례들을 설명하시오.
Ⅱ. <제시문 3>과 <제시문 4>를 <제시문 1>과 <제시문 2>와 연관지어 설명하고, 이 중 어느 하나의 관점에 입각하여 위의 사례들에 나타난 문제점의 해결 방안을 논술하시오.
【제시문 1】
인간이 자연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한에 비하면 무, 무에 비하면 전체. 무와 전체의 중간. 양극단을 이해하기에는 한이 없으므로 사물의 궁극과 시원은 인간 자신으로서는 알 수 없는 비밀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끌려나온 무에 대해서도, 그가 삼켜져 있는 무한에 대해서도 다 같이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사물의 시원도 궁극도 알 수 없는 영원한 절망 속에서 사물의 중간의 어떤 양상을 인지하는 외에 무엇을 할 것인가. 만물이 무에서 나와 무한을 향해 운반되어 가고 있다. 그 놀라운 진보를 누가 따라갈 수 있겠는가. 이 불가사의를 만들어낸 존재만이 그것을 알 수 있다. 그 외의 다른 누구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무한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은 마치 자연과 어느 정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사고하여 감히 자연의 탐구에 전념하게 되었다.(중략)
자연은 스스로의 상과 창조자의 상을 모든 사물에 조각해 놓고 있으므로, 모든 사물은 거의 전부 이중의 무한성에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학문이 그 탐구의 범위에서 무한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략) 학문은 그 원리가 다양하고 미묘하다는 점에서도 무한하다. 최종적으로 제출된 원리가 그 자신 위에 서 있지 않고 다른 원리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다른 원리는 그것을 지탱하여 주는 또 다른 원리를 가지고 있어 결코 궁극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물질계에서 그 성질상 무한히 분할될 수 있는 것이라도 우리의 감각으로 그 이상의 것을 감지할 수 없는 자를 불가분의 점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이성에 그렇게 보이는 자를 궁극자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극도의 더위도 극도의 추위도 느끼지 못한다. 좋은 성질도 지나치면 우리에겐 반역자가 되어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않고 그것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너무 젊거나 늙어도 정신활동의 제한을 받는다. 교육을 너무 많이 받거나 너무 적게 받아도 역시 정신활동의 제한을 받는다. 결국 극단적인 것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들과 어깨를 겨누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에게서 이탈되든가, 우리가 거기에서 이탈하든가 둘 중 하나다. 이상이 우리들의 참된 상태다. (중략)
그러므로 우리는 확실성과 견고성을 찾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이성은 언제나 외관상의 불안전으로 실망의 맛을 보는 것같이 기만당하고 있다. 어떤 사람도 유한을 두 개의 무한 사이에 고정시킬 수는 없다. 그들 무한은 유한을 포함하는 동시에 유한에서 벗어 나온다.
[파스칼, ‘팡세’]
【제시문 2】
가장 어려운 증명에 도달하기 위해 기하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아주 간단하고 쉬운 일련의 논증에 대해 성찰한 끝에 인간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와 유사한 논리적 방식으로 얻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로 보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논증에 요구되는 순서를 신중히 따르기만 한다면, 도달할 수 없는 아주 먼 진리란 없으며, 또 발견하지 못할 만큼 깊이 감추어진 진리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를 찾는 데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가장 간단하고 또 가장 알기 쉬운 것부터 시작해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 여러 학문에서 진리를 찾았던 사람들 가운데 수학자들만이 확실하고 분명한 추리와 논증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나도 수학자들이 출발한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중략)…
나는 가장 간단하고도 가장 일반적인 원리로부터 출발했으며, 내가 발견한 각각의 진리들은 다른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하나의 규칙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옛날에 내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여겼던 여러 난제를 해결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 가서는 미해결의 문제가 어느 정도 풀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데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 나는 주어진 문제에 하나의 해답만이 있으며 누가 발견하든지 다른 모든 사람도 그것을 알 수 있음을 감안할 때, 내 방법이 전혀 헛되어 보이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
【제시문 3】
세상에 경이로운 것이 많기는 하지만, 인간보다 경이로운 것이 없도다.
그리하여 그 힘은 남쪽 폭풍에 몰려 인간을 삼킬 듯이 물결쳐 밀리는
파도에다 길을 내어 흰 빛 바다를 건넌다.
또한 신들 중의 최고의 신이며 사멸하지 않고 지칠 줄 모르는 대지까지도 인간은 피곤하게 부린다,
해마다 쟁기 가는 대로 노새를 몰아 흙을 파헤치면서.
가벼운 마음의 새의 족속도
사나운 짐승의 또래도
심연 속의 해물도, 현명한 인간은
꼬아서 만든 그물을 걸어 둘러싸서 잡는다.
또한 들판의 굴속에 살며 언덕에서 헤매는 짐승도
사람의 재주 앞에 지배되고
갈기 사나운 말도 길들여 덜미에 멍에를 씌우고
지칠 줄 모르는 들소도 길들인다.
말하는 것도 바람같이 날쌘 생각도 나라의 기틀이 되는 모든 심정도
스스로 배워 알며, 맑은 하늘 아래서 견디기 어려운 서릿발도,
퍼붓는 빗발도 피할 줄을 안다.
그는 매사에 방책을 가졌고, 방책 없이는
어떤 일도 겪지 않는다.
오직 죽음에 대해서만은 도움이 헛되지만
불치의 병조차 면할 길을 짜낸다.
마음껏 나르는 생각은 교묘하고 능하여
때로는 사람을 선으로, 때로는 악으로 데려간다.
그가 만약 나라의 법을 존중하고
신들께 맹세한 정의를 지키면
그의 나라는 자랑스럽게 굳건하다.
[괴테, ‘파우스트’]
【제시문 4】
허자가 말했다.
“천지란 생물 중에 오직 인간이 귀합니다. 금수한테는 지혜가 없고 초목한테는 감각이 없으니까요. 또한 이들에게는 예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금수보다 귀한 존재이고, 초목은 금수보다 천한 존재지요.”
실옹은 고개를 들어 껄껄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는 정말 인간이로구나! 오륜(五倫)과 오사(五事)가 인간의 예의라면,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함께 먹이를 먹는 것은 금수의 예의이고 군락을 지어 가지를 뻗는 건 초목의 예의다. 인간의 입장에서 물(物)을 보면 인간이 귀하고 물(物)이 천하지만, 물(物)의 입장에서 인간을 보면 물(物)이 귀하고 인간이 천하다. 그러나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과 물(物)은 균등하다. 무릇 대도(大道)를 해치는 것으론 뽐내는 마음보다 더 심한 게 없다. 인간이 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물(物)을 천하게 여김은 뽐내는 마음의 근본이다. 너는 왜 하늘의 입장에서 물을 보지 않고 인간의 입장에서 물(物)을 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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