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14)는 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의 쓰레기 야적장에서 혼자 산다. 이곳이 그의 집이자 일터다. 아크라 사람들은 이곳을 기독교 구약성경 속 저주받은 도시를 빗대 소돔이라 부른다. 부도덕과 퇴폐 때문이 아니다. 이곳에서 컴퓨터와 전자제품 폐기물을 태울 때 나오는 중금속과 유독성 화학물질 탓에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뜻이다. 야적장 사이를 흐르는 개천은 오염돼 ‘검은 강’으로 변한 지 오래다. 이곳에서 처리되는 전자폐기물은 유럽과 미국 등에서 대부분 밀반입됐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인터넷판은 5일 서방이 비용을 핑계 대며 몰래 버린 전자폐기물에 신음하는 가나의 소년들을 다뤘다.
비스마르크는 4년 전 가나 중부 빈촌에서 홀로 상경했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어디론가 떠났고 어머니는 5년 전 교통사고로 숨졌다. 갈 곳이 없던 그는 고철을 수집해 먹고살 수 있다는 아크라의 야적장 소식을 듣고 무작정 올라왔다. 매일 야적장 쓰레기 더미와 소각장 주위를 뒤져 알루미늄 부스러기나 구리전선 모터 등을 모아 하루에 1유로(약 1700원)를 번다. 이 돈으로는 겨우 입에 풀칠할 쌀을 사면 끝이다. 운이 좋아 고철을 더 모으면 닭고기 한 조각을 더 사먹을 수 있다. 밤에는 컴퓨터 포장용 박스 옆에서 새우잠을 잔다. 비스마르크와 같은 처지의 10대 초반 아이들이 수백 명에 이른다. 그중 형편이 나은 아이들은 두서너씩 짝을 지어 몸을 겨우 눕힐 크기의 판잣집에 세들어 산다.
문제는 이들의 건강. 국제환경운동단체인 그린피스가 최근 조사한 결과 이곳의 납 카드뮴 등 인체에 해로운 중금속과 비소 다이옥신 비페닐 등 유독성 화학물질이 허용기준을 훨씬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들이 시나브로 독극물 중독에 빠져드는 것이다. 비스마르크를 비롯한 많은 아이가 가슴이 답답하다거나 심한 두통을 호소하고 있다. 인권운동가인 미케 아나네 씨는 “25세 생일을 맞기도 전에 숨질 아이도 많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선진국이 폐컴퓨터 등 유해한 전자폐기물을 후진국에 보내 처리하지 않도록 하는 ‘바젤협약’이 존재하지만 비용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일례로 폐컴퓨터에서 모니터를 분리 처리하는 데 독일에서는 3.5유로(약 6000원)가 들지만, 가나로 밀반출하는 데는 1.5유로(약 2600원)면 된다. 슈피겔은 한 해 평균 5000만 t의 전자폐기물이 이런 식으로 가나를 비롯한 후진국에 뿌려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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