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월 28일 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시대착오적인 3대 세습을 공식화한 ‘역사적 사건’은 뜻하지 않은 ‘남한 진보 좌파
진영’의 자중지란을 초래했다. 친북을 넘어 종북(從北)이라 지탄받아 온 민주노동당이 다음 날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논평을 내놓자 진보 좌파 진영을 대변해 온 경향신문이 10월 1일자 사설에서 “민노당은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라며 반박하고 나선 것이 발단이었다.
한 달이 흘렀지만 이른바 ‘반북 좌파’와 ‘친북 좌파’의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북한의 3대 세습 시도를 비판해온 한겨레신문과 진보신당, 일부 민주당 의원이 가세하자 ‘친북 좌파’ 진영은
이를 배신이나 변절인 양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반북과 친북의 함수관계를 놓고
다양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 논쟁은 진보 좌파 진영만의 것일 수 없다. 그것은 1945년 민족분단과 1950년
6·25전쟁 후의 남북 냉전구도가 고착화시킨 남한 내 정치 지형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2×2
매트릭스’로 단순화해 x축을 친북이냐 반북이냐(북한에 대한 인식과 태도), y축을 보수 우파냐 진보 좌파냐(경제사회 이슈에서
시장과 국가의 비중에 대한 의견)로 나눌 때 한국의 정치판은 그동안 ‘반북 우파’와 ‘친북 좌파’의 이분법이 지배했다.
자본주의 세계 정치경제사에서 시장우선주의와 국가우선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우파와 좌파의 대립은 보편적인 것이다. 만인 대 만인의
무한경쟁으로 시장의 폐단이 극에 달할 때 국가를 우선시하는 좌파의 목소리가 커졌고 이것이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불러 국가의
비효율성이 커지면 다시 우파에 힘이 실렸다. 현재의 패러다임인 우파 신자유주의도 강자 독식의 무한경쟁과 함께 약자를 배려한
사회안전망을 강조하는 절충의 한 형태다.
하지만 좌파의 이념을 독식한 북한이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키자 남한은
강고한 반북 우파 진영을 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남한 군부 권위주의 독재정권들이 경제성장을 위해 민주화 세력을 억압하면서
‘386세대’를 중심으로 좌파의 이념이 들불처럼 번졌고 이들이 대안 체제로 북한을 실제보다 미화하면서 ‘친북 좌파’의 대오가
형성됐다. 이후 이들은 북한 사회주의 체제가 김일성 김정일 1인 독재라는 가장 극우적인 퇴행체제로 변질돼 가는 것을 보면서도 애써
외면했다.
최근 반북 좌파의 모태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자주를 앞세운 친북적 민족해방(NL) 진영과
경쟁하면서 노동자 계급투쟁에 무게를 둬 온 민중민주(PD) 진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남한 주류 사회 비판을 위해 반북의
목소리를 숨겼던 이들이 북한의 3대 세습을 계기로 전면에 등장한 것은 가히 정치적 ‘커밍아웃’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반북 논쟁은 진보 좌파의 분화를 촉진하고 결국 진보 좌파의 진화로 귀결될 수 있다. 그래서 이 논쟁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건전한 반북 좌파들이 합리적인 반북 우파들과 생산적인 논의를 하며 우선 한국사회의 기형적이고 협소한 이념적
정치적 공간을 넓히길 기대한다.
이는 남한이 주도하는 바람직한 통일에도 기여할 것이다. 아직도 북한을 두둔하는 종북주의자들의 입지가 줄어들면 3대를 이어 낡은 수령 절대주의 독재국가를 유지하려는 북한의 우군도 세가 약화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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