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이미 지난해부터 ‘유령 고령자(고령으로 이미 사망한 사람)의 연금 수급’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 7월 말 도쿄의 최고령 남성으로 등록된 111세 할아버지가 실제로는 30년 전에 숨진 것으로 드러난 데 이어 당국 조사 결과 유족들이 ‘사망자’의 노령연금을 계속 받기 위해 시신을 집안에 미라 상태로 방치하면서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불법으로 연금을 받아온 81세 딸과 53세 손녀는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며칠 뒤엔 도쿄 최고령자인 113세 할머니도 서류상 주소지에 살지 않고 행방불명인 사실이 드러났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해 사건을 계기로 76세 이상의 연금 수급자 가운데 지난 1년간 건강보험 이용 사실이 없는 34만 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소재파악 작업을 벌인 결과 572명이 이미 사망했거나 실종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최근 발표했다. 대부분은 ‘사망자의 연금’에 의지해 생계를 이어가는 유족이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케이스였다. 정부는 이들에 대한 연금 지급을 즉시 중단하고 이미 지불된 연금에 대해서는 유족을 상대로 반환을 청구하기로 했다. 또 초고령자의 생존 사실은 공무원이 반드시 방문해 확인하도록 했다.
일본에서 ‘유령 연금’이 이처럼 만연한 것은 호적정리 및 고령자 생존 확인 작업의 부실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난해 즉각 고령자 생존 확인과 연금수급 실태 파악에 나선 결과는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세계 최고의 ‘장수 대국’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일본의 고령자 통계가 엉터리로 밝혀진 것이다. 지난해 9월 조사 결과 호적에는 살아 있는 것으로 등재돼 있지만 현 거주지가 확인되지 않는 100세 이상 고령자가 23만4354명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120세 이상은 7만7118명, 150세 이상은 884명이었다. 나가사키(長崎) 현에는 200세 남성이 호적상 생존한 것으로 기록돼 있을 정도였다. 도쿄 오사카(大阪) 효고(兵庫) 후쿠오카(福岡) 오키나와(沖繩) 등에는 100세 이상 행방불명자가 각각 1만 명이 넘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고령화사회의 속도를 행정시스템이 따라잡지 못해 생긴 ‘행정 오류’라고 지적했다.
공식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9월 15일 현재 일본의 100세 이상 인구는 4만4449명이다. 그러나 이미 사망한 고령자의 불법 연금 수급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유족이 고의로 사망 사실을 숨기면 ‘100세 이상 인구 통계’도 부정확할 수 있다. 일본에선 100세가 되면 총리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축하선물을 주지만 이를 우편으로 발송하거나 가족이 대신 받을 수 있고, 공무원이 고령자의 생존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려 해도 가족이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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