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24일 판결은 일제강점기 식민지배로 피해를 본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여러 소송에서 승소 가능성을 인정한 최초의 사법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주심인 김능환 대법관은 “건국하는 심정으로 이 판결을 썼다”고 주변 지인에게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①일제 식민지배는 불법, 국민징용령도 무효
대한민국 대법원 판결과 일본 최고재판소가 내린 판결은 4가지 쟁점에서 판단이 크게 갈렸다. 우선 일본 최고재판소는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를 합법이라고 봤다. 따라서 당시 일본인에게 적용한 국민징용령을 한국인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강제동원은 합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우리 헌법에 비춰 볼 때 일제의 식민지배는 불법적인 강점(强占)에 지나지 않는다”며 “당시 강제동원도 당연히 불법”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일본 법원의 판결 효력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사소송법 제217조 3호는 ‘외국 법원이 내린 확정판결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강제징용 주체인 옛 미쓰비시, 옛 일본제철과 현재 미쓰비시, 신일본제철은 법인이 달라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채무를 승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법인을 변경한 배경에 주목했다. 일본은 패전 직후인 1946년 일본 기업들이 부담할 배상 채무와 노무자들에 대한 미지급 임금 채무 등을 해결하기 위해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을 제정해 회사의 사업과 재산 등을 정리했다. 옛 미쓰비시와 일본제철도 이 법에 따라 1950년 해산된 뒤 여러 절차를 거쳐 1964년 지금 법인으로 바뀌었다. 대법원은 “법인만 바뀌었을 뿐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라고 판단했다.
③한일 청구권협정이 국민 개인의 청구권까지 없앨 수 없어
한일 청구권협정은 일제강점기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문제에서 늘 피해자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었다. 1965년 한일이 체결한 ‘한일협정’의 부속협정인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2조는 “양국의 모든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돼 있다. 일본은 이 조항을 들어 청구권의 소멸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反)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2005년 8월 국무총리실 산하 ‘한일회담 문서 공개 후속대책 민관공동위원회’는 청구권과 관련해 이 같은 해석을 내놨었다. 대법원이 이 위원회의 해석을 판단의 준거로 삼은 것이다.
④민법상 소멸시효 안 지나
일본 최고재판소는 한일 청구권협정이 아니더라도 원고의 청구는 일본 민법상 제척기한인 20년과 안전배려의무 위반에 대한 손해배상 소멸시효(10년)가 완성됐다는 이유를 들어 기각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 대법원은 “민법상 채권의 소멸시효(발생일로부터 10년, 안 날로부터 3년)가 완성돼 청구를 거절한다는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이라고 일축했다.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없어졌다는 설이 많아 개인이 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성낙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제강점기 피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일본 측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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