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티르 말레이시아 前총리, 동방정책과 한국을 말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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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티르 말레이시아 前총리, 동방정책과 한국을 말하다
“한국, 日 압도하기 시작… 발전 원동력은 국가에 대한 자부심”

기자가 전주 합죽선을 선물하자 올해 87세인 마하티르 전 총리는 마치 소년처럼 좋아했다. 그는 ‘실용복장’인 회색 근무복을 입은 채 이슬람 금식기간인 라마단의 계율을 지키고 있었다. 푸트라자야=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기자가 전주 합죽선을 선물하자 올해 87세인 마하티르 전 총리는 마치 소년처럼 좋아했다. 그는 ‘실용복장’인 회색 근무복을 입은 채 이슬람 금식기간인 라마단의 계율을 지키고 있었다. 푸트라자야=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 올해는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전 총리가 시작한 ‘동방정책(Look East Policy)’ 30주년. 한국과 일본의 경제성장 모델을 같은 아시아 국가가 처음 따라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동방정책의 과거, 현재, 미래는 여러 가지 의미를 던진다. 이후 말레이시아는 세계적인 통상국가로 발전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가 동방정책과 함께 주창한 ‘아시아적 가치’ 역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
“한국 출신 대표팀 감독이 더 많았다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마하티르 빈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87)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말레이시아가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은메달과 동메달 각 1개에 머문 얘기부터 꺼냈다. 특히 그는 배드민턴에서 말레이시아의 국민영웅 리총웨이 선수가 중국 선수에게 패해 은메달에 그친 것을 아쉬워했다.

22년간의 총리생활을 마치고 2003년 퇴임한 마하티르 전 총리는 여전히 말레이시아는 물론이고 아시아의 ‘원로(元老)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와 함께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를 주창한 그의 자서전 ‘닥터 인 더 하우스’는 다음 달 초 한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동방정책 30년’을 맞아 가진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한 평가와 인연, 치열해진 동아시아 정세, 그리고 다가오는 ‘아시아시대’에 대한 비전을 설명했다. 이번 인터뷰는 6일 말레이시아 행정도시 푸트라자야에 있는 프르다나 리더십 재단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그는 현재 이 재단의 명예 총재를 맡고 있다.

―총리의 동방정책은 한국인에게도 큰 자부심을 안겨줬다.

“그런가? 처음에 ‘동방’을 배우자고 주장했더니 말레이시아 엘리트들은 ‘무슨 소리냐. 유럽이 선진사회 아니냐’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물론 한국보다는 일본이 주된 목표이긴 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은 여러 측면에서 일본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삼성이 대표적인 사례다. 힘겨워하는 소니를 보며 일본의 실패를 연구 중이다. 우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간 한국을 자주 왕래했는데….

“1966년이 첫 방문이었다. 서울역 앞 대우빌딩이 막 기초공사를 할 무렵이었다. 서울의 밤은 어두웠고 기술은 우리보다 낙후해 보였다. 그런데 방문할 때마다 빠르게 변신했다. 그 원동력인 ‘새마을운동’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공무원과 기업인, 심지어 정치인들까지 한데 모여 ‘조국 근대화’란 애국적 가치를 고양하고 있었다. 실제 동방정책의 출발 배경이다.”

―저서에서 일본 사회의 성장 배경을 ‘수치심(shame)’이라고 분석했는데 한국의 발전 원동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국가에 대한 자부심(National Pride)일 것이다. 아마도 경제 분야에서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었을 것이다(웃음).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다. 일에 대한 의지나 건전한 노동윤리도 배우고픈 장점이었다.”

―외과의사에서 국가지도자로 변신했는데…

“보통은 법조인이 정치에 적합하다고 한다. 하지만 의사의 장점도 있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여러 선입견을 무시하고 질병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찾아 들어가는 훈련을 한 것이다. 국가를 개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모든 지도자를 만난 유일한 외국 지도자이다.

“맞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까지도 만났으니….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산업화정책에 대한 공통점으로 인연을 맺었고 노태우 전 대통령과는 미국의 반대에도 동아시아경제협의체(EAEC) 논의를 이어나갔다. 요즘 많이 아프다는데, 안부를 전한다. ‘아세안+3(한중일)’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비전을 공유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피낭대교 건설로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다.”

―근래 한중일 3국은 물론이고 미국도 아세안에 대한 구애가 뜨겁다.

“그렇다. 전 세계에 수많은 국가모임이 있지만 아세안만큼 성공적인 그룹도 드물다. 아세안이 한국만큼 경제적 성과는 없지만 상호 간에 성장전략을 공유하며 뚜렷한 협력모델을 구축해냈다. 아세안은 날이 갈수록 더욱 중요한 지역이 될 것이다.”

―영토분쟁도 심각해졌다.

“중국은 2000년 이상 이곳에 존재해온 상수(常數)다. 서구세력과 달리 회피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사실 전 세계 어디서나 인접국끼리의 갈등은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절대로 군사적 해결이 아닌 외교적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한중일 간에도 마찬가지다. 협상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오늘날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영어에 능통한 통상국가가 됐다.

“한국과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한글을 따로 배울 수는 없는 일이다. 영어는 탁월한 통상언어(commercial language)이자 외교언어다. 나는 총리 재임 시 학생들이 과학과 수학을 영어로 배울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물론 전통과 세계화는 종종 갈등을 빚지만 영어 보급은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오랜 기간 반(反)서방주의를 주창한 ‘아시아의 대변자’ 아니었나. 심지어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는 국제통화기금(IMF) 처방까지 거절했는데….

“세상이 지나치게 서구중심(Eurocentric)으로 짜인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들은 ‘경쟁’을 중요시한다지만 막상 지나친 맹신으로 ‘힘의 논리’에 매몰됐다. 강자와 약자의 자유경쟁이 어떻게 공정할 수 있나. 화폐금융시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1997년 위기 때 서구의 제안을 거절하고 심지어 동아시아 공동체를 제안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재인식이 절실하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다.

“동아시아를 대변할 만한 그 어떤 기구나 상징이 없다는 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경제는 성장했다지만 아시아 국가는 모두 분리되어 갈등 속에 놓여 있다. 북미나 유럽에 대응할 만한 플랫폼에 대해서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이슬람채권(수쿠크)법 도입을 놓고 논란이 뜨거웠다.

“사실 조금 놀랐다. 이는 기존 금융방식의 대안일 뿐이다. 오늘날 서방세계가 힘겨워하는 이유는 지나치게 부채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슬람 뱅킹이란 투자자들이 비즈니스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자 대신 수익을 나누는 것뿐이다. 종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한국에서 문제가 된다면 명칭을 ‘라 리바(La riba·이자가 없다) 뱅킹’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떨까.”

―전 세계가 ‘아시아시대’의 도래를 점친다. 주인공은 역시 젊은 세대일 것 같다.

“미래의 세계 정세는 아시아 젊은 세대들에게 큰 기회가 될 것이다. 여러 이웃 나라를 여행하고 공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독립적 사고를 할 것을 당부한다. 세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 ‘아시아적인 방식(Asian way)’을 찾아야 한다.”
■ 마하티르와 동방정책 30년
취임직후 “서방세계 의존 벗어나자” 한국 경제 벤치마킹… “최초의 한류”


마하티르는 1981년부터 2003년까지 22년간 말레이시아 총리를 지낸 정치인이다. 말레이계(系) 의사 출신인 그는 취임 직후 ‘서방세계에 의존적인 외교와 경제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파격 주장으로 제3세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경제는 한국과 일본을 배우자는 ‘동방정책’을 통해 농업국가이던 말레이시아를 재임 기간 1인당 국민소득 8000달러의 중견 공업국으로 발전시켰다. 말레이시아의 작년 1인당 국민소득은 9000달러.

마하티르의 동방정책은 사상 최초의 한류(韓流)라는 평가도 받는다. 1985년 선보인 말레이시아의 첫 국민차 ‘프로톤(proton)’은 현대자동차 ‘포니(pony)’의 성공사례와 일본의 기술을 합쳐 만들어낸 작품이다.

동방정책이 추진된 지난 30년간 말레이시아는 많은 기능인력과 유학생을 한국과 일본으로 파견해 기술과 인재육성 방법론을 벤치마킹했고 이는 다시 인근 아세안 국가로 전파됐다. 마하티르는 “기술도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한국과 일본의 근면함과 책임감을 이곳에서도 뿌리 내리게 하고 싶었다”고 동방정책의 의미를 설명했다.

[채널A 영상]무토 주한일본대사 “한국 발전의 원동력은 국제화”

● 마하티르 빈 모하맛 前총리


△1925년 영국 식민지이던 말레이시아 케다 주 알로스타 출생
△1947년 싱가포르 킹에드워드7세 의대 입학
△1953년부터 외과의사로 활동
△1964년 여당인 통일말레이시아국민조직(UMNO) 소속으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
△1974년 말레이시아 교육장관
△1976년 부총리 겸 통상산업장관
△1981년 당 총재 겸 말레이시아 제4대 총리
△2003년 5선 연임을 끝으로 22년 만에 퇴임
△현재는 프르다나(Perdana)리더십 재단 명예 총재

푸트라자야=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마하티르#동방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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