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볼라벤은 충북 괴산 삼송마을의 수호목이자 천연기념물 제290호인 왕소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렸다. 수령이 600년인 이 왕소나무의 회생 작업을 맡은 문화재청과 괴산군에는 요즘도 종종 ‘왕소나무를 살릴 비책이 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만큼이나 소나무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각별하다. 조상들은 소나무로 지어진 집에서 살았고 소나무로 만든 관에서 생을 마감했다.
수백 년 동안 한곳에서 뿌리를 내려온 소나무를 위협하는 것은 태풍만이 아니다. 지구 온난화에 따라 한반도의 평균 기온은 최근 10년간 0.5도 상승했다. 2050년이면 평균 기온이 지금보다 2도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추운 기후에서 서식하는 소나무가 강원 및 경북 북부 산간 지역을 제외한 지역에선 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아열대 기후에서 나타나는 병해충도 소나무에 치명적이다. 윤병현 산림청 산림병해충과장은 “최근 한반도가 더워지면서 나타난 꽃매미, 갈색날개매미충, 아시아매미나방, 미국선녀벌레 등은 나무의 즙을 빨아먹어 나무를 말려 죽인다”며 “한반도 기온이 오르면 없던 병해충이 더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후 변화는 소나무뿐 아니라 문화재 전반에도 근본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인천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강원 삼척 도계리 긴잎느티나무 같은 천연기념물 식물과 재두루미 등 천연기념물 동물이 서식지 변화로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흰개미가 목조 문화재를 갉아먹은 사례가 2006년 12건에서 2010년 50건으로 급증했다.
목조 문화재의 피해를 줄이려면 해충을 없애는 약제를 개발하거나 해충이 살기 힘든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기후 변화를 감안해 천연기념물들의 새로운 서식지를 확보해야 한다. 방풍림(防風林)이나 해수면 상승에 따른 해안가 침식을 막는 방사림(防砂林) 조성도 서둘러야 한다. 무엇 하나 단기간에 마무리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하지만 수십 년 앞을 내다보는 기후 변화 대책은 당장 급한 일들에 밀려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 미국계 캐나다 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처럼 기후 변화로 인해 달라질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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