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한일 관계를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공통의 인식 토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감춰온 문서 상당수를 공개하라는 일본 법원의 1심 판결을 이끌어 낸 히가시자와 야스시(東澤靖·53·사진) 변호사는 1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과거에 뭘 했고,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 국민이 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히가시자와 변호사는 일본 국민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보수로 원고 측 변호인단 단장을 자청해 2006년 1차 소송부터 7년째 이어진 법정 투쟁을 이끌어 왔다. 1986년 변호사가 된 뒤 일본 내 외국인 노동자 권리구제에 뛰어들었고 이를 계기로 필리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본 내 피해배상 소송도 진행한 인권변호사다. 다음은 히가시자와 변호사의 합동법률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 주요 내용.
―일본 국민 사이에 국익을 해치는 소송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런 얘기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지만 이는 비민주적인 발상이다. 정부의 밀실외교가 진정 일본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판결이 확정되면 한일 간에 어떤 미해결 문제가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뭘 하면 좋을지 실마리를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
―어떤 내용이 공개될 것으로 기대하나.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및 일제 강제징용자의 개인청구권 문제 등) 한일 간에 해결이 끝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한일회담에서 제대로 얘기가 안 됐다는 주장이 확인될 수도 있다.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 문제 등과 관련해 한일의 당시 주장과 지금 주장이 같은지 다른지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의 항소 가능성은….
“유감이지만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도 맞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1심 판결 내용을 보면 우리가 100% 이긴 게 아니다. 70%에 대해서만 공개하라고 명령했다. 나머지 문서도 추가로 공개할 것을 청구할지 검토 중이다.”
―필리핀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배상 소송도 이끌었는데….
“2000년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에서 졌다. 하지만 소송을 계기로 피해 할머니들이 모여 스스로를 격려하는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폭력을 당한 것은 일본군 때문이며 그들이 한 나쁜 짓을 역사에 남겨야 한다는 삶의 의미를 찾게 됐다. 그전까지는 할머니들이 가족에게도 피해 사실을 말 못하고 평생을 수치스러워하며 힘든 생활을 해왔다.”
―당시 최고재판소의 논리는….
“필리핀 할머니들은 일본군의 게릴라 토벌 중에 강제로 납치돼 강간당하고 감금된 사례가 많았다. 이에 따라 우리는 일본이 1907년 가입한 헤이그 육전(陸戰)조약에 따라 피해보상을 청구했다. 헤이그 육전조약은 전쟁 때 상대국에 대한 가해 수단을 제한하는 조약이다. 하지만 최고재판소는 조약에 의해 보장된 국제법상 권리는 국가의 권리로 개인의 권리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한국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일한청구권협정에 따라 개인 청구권은 소멸됐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정반대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일본인 원폭 피해자들이 1960년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배상을 청구했을 때다. 당시 피해자들은 원폭을 투하한 미국 정부에 대한 개인 청구권을 일본 정부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포기했다고 항의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우리가 포기한 것은 개인 청구권이 아니라 국가의 외교 보호권일 뿐이다”고 반박했다. 일본 정부는 나중에 같은 논리로 아시아 주변국 피해자들에게서 소송을 당하자 논리를 바꿨다.”
―일본의 일부 정치인은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수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나는 거꾸로 고노 담화가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 안긴 피해를 직시하지 않으면 진정한 평화국가가 될 수 없고 아시아 이웃 나라들과 제대로 된 외교 관계도 구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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