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세금을 내지 않으려 했던 외국계 법인의 꼼수가 법원의 철퇴를 맞았다.
싱가포르투자청(GSIC)이 1994년 설립한 법인 리코시아는 2004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사진)를 인수할 당시 “과점주주(발행 주식의 51% 이상을 소유한 주주)가 아닌데도 취득세 등 169억9000만 원을 부과한 건 부당하다”며 서울 강남구청장(서울시 공동 참가)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리코시아는 인수 당시 레코강남, 레코KDB 등 자회사 2개를 만든 뒤 스타타워 소유주였던 스타홀딩스(론스타가 설립)로부터 스타타워의 주식을 모두 인수했다. 자회사들이 지방세법상 취득세를 내야 하는 과점주주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각 전체 주식의 50.01%, 49.99%를 인수하도록 했다. 1999년 당시 행정자치부가 “모회사가 100% 출자한 자회사가 비상장법인의 주주일 때 모회사는 주주에 해당하지 않아 취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로 내린 유권해석을 이용하기 위해 편법을 쓴 것. 당시 서울시는 자회사 2곳이 유령회사라고 판단해 취득세를 낼 능력이 없다고 보고 모회사에 취득세를 부과했다.
법원의 판결은 엇갈렸다. 2007년 1심 재판부는 “리코시아가 세금을 내지 않으려 한 목적으로 유령회사를 세웠기 때문에 취득세 부과는 정당하다”고 판결했지만, 2008년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은 “모회사인 리코시아에 취득세를 과세한 건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1심 판결을 취소했다.
대법원은 올해 2월 “사실상 소득이나 수익, 재산이 있는 자를 납세의무자로 정한다는 실질과세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며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고법 행정1부(부장판사 고의영)는 최근 파기환송심에서 “자회사들이 스타타워의 주식을 사고판 것 외에는 사업 실적이 전혀 없고 자본금이 1200원밖에 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납세 회피를 위해 세운 유령회사라고 인정된다”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리코시아는 강남구에 납부한 취득세 등 169억900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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