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푸른색에 피라미드 형태로 곧게 뻗어 제주 한라산에서만 자생군락을 이루는 구상나무. 이 나무는 종자번식 등을 거쳐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애용되고 있다. 죽은 뒤에는 기묘한 형상으로 남아 ‘살아서 100년, 죽어서 100년’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나무가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최근 한국 특산종인 구상나무(학명 Abies Koreana)를 ‘멸종위기’ 등급으로 상향 조정했다고 25일 밝혔다.
종전 IUCN이 정한 ‘위험에 처한 적색목록’ 6등급 가운데 멸종위기근접 등급에서 2단계 높은 멸종위기 등급으로 바뀐 것. 등급을 상향 조정한 이유는 기후변화 등으로 자생지 분포면적이 급속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현재 구상나무는 제주도 외에 가야산 지리산 덕유산 등에 일부 자라고 있지만 군락을 형성한 곳은 한라산뿐이다.
국내 구상나무 자생지 면적은 여의도 면적(8.4km²)보다 다소 넓은 12km² 정도다. 10km² 이내로 감소하면 멸종위기 단계에서 ‘극심 멸종위기’ 단계로 진입한다. 제주도 한라산연구소가 구상나무 유전자와 생태 특성 등을 조사한 결과 추운 기후에서 자라나는 한대성 식물인 구상나무가 기후변화에 따라 수분 공급에 불균형이 생기면서 생장에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한라산연구소 고정군 수목시험과장은 “한라산 구상나무는 생육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는 최고 지대까지 올라간 상황”이라며 “기후온난화가 계속 진행되면 섬이라는 고립된 지역에서 자생하는 특성 때문에 자생지가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라산에 구상나무가 분포한 지역은 7.9km² 규모다. 해발 1300m 이상 고지대 52군데에 퍼져 있다.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지만 생명력이 강한 소나무와 제주조릿대 등이 고지대로 서식지 영역을 확대하면서 구상나무 생태가 위협받는 상황이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는 최근 전나무에 접붙이는 방법으로 환경 적응에 강한 구상나무 보존림 조성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 효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구상나무는 1920년 미국 하버드대 부설 아널드수목원 소속 아시아담당 식물학자인 어니스트 H 윌슨이 신종으로 학계에 보고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 박사는 “구상나무는 기후변화에 민감한 종으로 국제적 관심을 받고 있다”며 “한라산은 세계 유일의 구상나무 대단위 숲이 있지만 점차 분포 면적이 감소해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