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산 구상나무 죽어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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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폭설 등 기후변화로 枯死 추정

한라산 영실등산코스에 특산수종인 구상나무가 집단으로 말라죽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한라산 영실등산코스에 특산수종인 구상나무가 집단으로 말라죽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살아서 100년, 죽어서 100년’이라는 별명을 가진 구상나무(학명 Abies Koreana)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이 별명은 피라미드 형태로 곧게 펴진 늘 푸른 모습과 죽어서도 기묘한 형상을 간직하는 특징 때문에 붙여진 것.

22일 제주 한라산 해발 1600m의 영실 등산 코스. 등산로 서쪽으로 거대한 암반이 둘러쳐진 ‘병풍바위’,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우뚝 선 바위들인 ‘오백장군’ 등이 수려한 경관을 뽐냈다. 그러나 동쪽으로는 특산 수종인 구상나무가 회색빛으로 말라 가고 있어 볼썽사나운 모습이다.

수령이 오래된 상태가 아니라 한눈에 봐도 한창 성장하던 수십 그루가 집단으로 말라죽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린 구상나무들도 잎을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냈다. 윗세오름(해발 1700m)을 지나 남벽 분기점으로 가는 등산 코스 주변에도 말라죽는 구상나무가 쉽게 눈에 띄었다.

이처럼 구상나무가 고사하고 있는 까닭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태풍, 폭설 등 극한 기후 때문으로 추정할 뿐이다. 제주도 한라산연구소가 지난해 구상나무 유전자와 생태 특성 등을 조사한 결과 추운 날씨에 적응한 한대성 구상나무가 기후 변화에 따라 수분 공급에 불균형이 생기면서 생장에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라산에서 구상나무가 분포한 지역은 7.9km² 규모로 해발 1300m 이상 고지대 52군데에 퍼져 있다. 대단위로 군락을 이룬 것은 세계적으로 제주도가 유일하다. 이들 구상나무는 기후변화 외에도 생명력이 강한 소나무와 제주조릿대 등이 고지대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자생지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올해 초 구상나무를 ‘위험에 처한 적색목록’ 6등급 가운데 위기근접 등급에서 2단계 높은 멸종위기 등급으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 박사는 “구상나무는 기후변화에 민감한 종으로 국제적 관심을 받고 있다”며 “전나무에 구상나무를 접붙이기 하는 이종 간 접목 기술을 개발해 대량 증식이 가능하지만 한라산 자생지를 회복시킬 근본적인 처방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상나무는 1920년 미국 하버드대 부설 아널드수목원 소속 아시아담당 식물학자인 어니스트 윌슨이 신종으로 학계에 보고하면서 알려졌다. 제주에서 미국과 유럽 등지로 건너간 구상나무는 종자 번식 등을 거쳐 크리스마스트리 등으로 애용되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구상나무#한라산#극한 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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