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大 미래과학 콘서트]다차원 분광학 분야서 독보적 성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1일 03시 00분


조민행 고려대 화학과 교수

조민행 고려대 화학과 교수(48·사진)는 고려대에 몸담고 있는 교수 중 노벨상 수상에 가장 근접했다고 평가받는 연구자 중 한 명이다. 국내 최초로 다차원 분광학(分光學) 연구를 시작한 조 교수는 이 분야를 개척한 권위자로 꼽힌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조 교수는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유기화학을 전공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물리화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조 교수가 분광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그가 연구해 온 분광학이란 일반적으로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과 빛의 상호작용을 이용해 해당 물질의 구조와 성질을 밝히는 연구 방법을 일컫는다. 특히 분자는 크기가 작은 만큼 구조가 바뀌거나 공간 안에서 이동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에 따라 용액 상에서 진행되는 화학 및 생물학적 반응을 관찰하려면 초고속 레이저를 활용해야 한다. 이는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매 순간마다 연속으로 포착하기 위해 초고속 카메라를 이용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초고속 레이저를 활용하면 100조분의 1초처럼 매우 짧은 시간에 진행되는 적외선이나 가시광선의 레이저 파동(펄스)이 분자와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방출되는 신호(시그널)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얻은 시그널은 화학 및 생물학적 분자들이 지닌 구조와 성질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하는지에 관한 직접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다차원 분광학은 바로 이러한 분자 움직임의 측정 원리를 좀 더 넓은 범위로 확장시킨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분자의 움직임을 실시간에 직간접으로 파악하겠다는 생각은 화학자들의 오랜 꿈이었다. 하지만 학문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다차원 분광학에 관한 이론이 처음 학계에 제안된 것은 1994년이다. 실제 실험은 1998년에야 이뤄졌다. 10여 년에 불과한 신생학문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쓰일 수 있다. 예컨대 다차원 분광학을 활용해 유전자(DNA)의 구조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 DNA가 꽈배기 모양의 이중나선 구조라는 사실은 이미 50여 년 전 확인됐지만 복제 과정에서 구조가 얼마나 빠른 시간에 어떤 형태로 바뀌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다차원 분광학을 활용하면 이를 확인하는 게 가능해질 수 있다. 몸속에서 단백질의 구조가 바뀌는 과정에서의 구조 변화도 예측이 가능하다. 따라서 생체분자의 구조 변화를 푸는데 분광학이 큰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다차원 분광학이 10여 년에 불과한 짧은 역사를 지녔음에도 세계 주요 대학과 연구소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분야가 된 것은 이러한 기대 때문이다.

조 교수는 바로 다차원 분광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그는 펨토초(1000조 분의 1초) 단위의 초고속 레이저를 이용해 생체분자의 3차원 입체 구조와 변화를 분석, 관찰하는 데 유용한 계산법을 연구개발했다.

또 그는 광합성 단백질에서의 에너지 전달 현상과 광학 이성질체(異性質體·같은 원소와 같은 수의 원자로 이뤄졌지만 연결 방식이나 배열이 다른 화합물) 구조를 규명하기 위한 측정법을 개발했다. 이 측정법을 담은 논문은 2009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렸다. 이 논문은 심사위원들로부터 “새로운 연구주제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조 교수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10년에는 ‘경암 학술상’을, 그 이듬해에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학술상을 각각 받았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학술원상 자연과학기초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해외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네이처를 포함한 국내외 학술지에 약 200편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으며 각종 학술회의의 조직위원, 기조강연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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