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뒷談]드라마-영화 ‘접수’한 액션 여배우 하지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7일 03시 00분


100일만에 선수급 변신 액션강자… ‘캔디형 여전사’ 굳혀

고려 출신 공녀로 원나라 황후의 자리에 오른 기황후. 그의 일대기를 그린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는 역사 왜곡 논란으로 방영 전 곤욕을 치렀지만 지금은 20%에 가까운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를 달리고 있다.

인기의 일등 공신은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 하지원(35)이다. 그녀는 ‘기황후’의 초반에서 ‘여전사’ 이미지를 십분 활용해 고정 시청자를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다. 활쏘기 검술 승마에 능한 왈패 연기는 전작인 ‘다모’(2003년)와 ‘시크릿 가든’(2010년) ‘더킹 투하츠’(2012년)의 액션 연기를 떠올리게 한다. 남장여자 역할도 그의 전매특허다. 그녀는 드라마 ‘다모’와 ‘황진이’(2006년), 영화 ‘형사 Duelist’(2005년)에서 남장여자로 나왔다. ‘시크릿 가든’에서는 ‘남자의 영혼을 가진’ 여자이기도 했다.
몸으로 사는 여자

하지원은 ’몸 쓰는’ 여주인공 캐스팅 1순위로 꼽힌다. 그녀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16편과 드라마 9편 가운데 액션과 재난 장르가 7편, 공포와 스릴러가 3편, 스포츠 장르가 2편이다. 극 중 직업을 보면 형사나 군인 역할을 3차례 맡았고(드라마 ‘다모’와 ‘더킹 투하츠’, 영화 ‘형사’), 영화에선 국가대표 탁구선수(‘코리아’·2012년)와 권투선수(‘1번가의 기적’·2007년) 에어로빅 선수(‘색즉시공’·2002년)를 맡아 열연했다.

하지원은 한국에서 액션 장면을 가장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여배우다. 내년 1월 개봉하는 영화 ‘조선미녀삼총사’의 김용수 무술감독은 하지원에 대해 ”액션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여배우”라고 평가했다. 김 감독은 “같은 격투신, 칼싸움 동작을 하더라도 다른 여배우들은 액션의 합을 맞추느라 연기 감정을 잃는데, 하지원은 자신이 카메라에 어떻게 비칠지 각도까지 계산해서 연기한다”고 전했다.

하지원은 고난도 와이어 연기도 대역 없이 해낸다. ‘다모’와 ‘시크릿 가든’에서 하지원과 작업한 김민수 무술감독은 “‘시크릿 가든’ 촬영 때 전문 스턴트맨들도 한 달간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하는 어려운 와이어 연기였는데 하지원은 워낙 액션 경험이 풍부해서인지 두세 번 연습해보고 바로 해내서 놀랐다. 스태프가 모두 박수 치며 흥분했다”고 말했다.

액션 전문 배우 하지원은 운동선수급의 강철체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녀를 지도했던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고 눈썰미가 정확하다”면서도 “타고난 실력보다 노력을 통해 얻은 게 많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해운대’(2009년)를 비롯해 ‘1번가의 기적’과 ‘색즉시공’에서 함께 작업한 윤제균 감독은 “하지원만큼 지독하게 노력하는 배우를 본 적 없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원을 지도했던 한동길 트레이너는 “반사 신경이 좋고 한 번 봤던 동작을 90% 이상 정확히 흉내 낼 만큼 체득력이 좋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타고난 능력이 월등히 뛰어나기보단 남들보다 몰입도가 높고 노력하는 수준이 다른 것”이라고 평했다.

하지원은 데뷔 초 “연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합기도 검도 수영 승마 골프를 배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녀는 촬영에 들어갈 때마다 3개월 이상 해당 종목의 선수급으로 몸을 단련한다. 또 액션의 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꾸준히 발레와 요가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복싱 세계챔피언인 김주희 선수를 모델로 한 영화 ‘1번가의 기적’을 촬영할 때는 김 선수와 함께 훈련했다. 당시 하지원을 지도했던 정문호 거인체육관 관장은 “3개월간 매일 윗몸일으키기 100개씩 6, 7세트는 기본이었고 7∼10km 로드워크를 김주희와 똑같이 했다. 당시처럼 계속 2년만 더 훈련했다면 세계 챔피언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저 장면이 들어간 영화 ‘7광구’(2011년)를 위해 스킨스쿠버와 바이크 면허도 땄다. 탁구 영화인 ‘코리아’를 찍을 땐 현정화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에게 매일 3, 4시간씩 3개월간 지도를 받았다. 한동길 트레이너는 “실제 선수들과 똑같은 강도로 훈련하다 보니 겉모습만 변하는 게 아니라 근육의 질도 달라졌다”며 “한창 근육이 커져 있는 상태에서 연습을 시작했는데 탁구 선수 역을 맡으면서 3개월 만에 진짜 선수처럼 등이 약간 굽고 가늘어졌다”고 놀라워했다.

액션 능력 자체보다는 자신의 동작을 돋보이게 하는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분석도 있다. 안혁모 IHQ 연기 아카데미 원장은 “눈빛과 연기 호흡이 좋은 덕분에 같은 액션이라도 더 빛난다”며 “액션 연기는 대사보다는 침묵, 움직임 자체보다 멈춰 있는 시간이 중요한데 하지원은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연기에 활용한다”고 분석했다.
한국화한 캔디형 여전사

젊어서 액션 연기를 하던 여배우들도 30대로 접어들면 몸 쓰는 배역을 사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하지원은 그 반대다. 데뷔 초 비교적 여성스러운 역할로 나왔던 그녀는 2010년 스턴트우먼을 연기한 ‘시크릿 가든’ 이후 지금까지 모두 격렬한 액션 연기를 선보이며 ‘여전사’ 이미지를 굳혔다.

이미지 컨설턴트인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장은 하지원에 대해 “데뷔 초 일반적인 예쁜 여성의 이미지에서 최근엔 카리스마와 개성이 강한 중성적 이미지, 전사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면서 “한국에서는 여성스럽고 우아한 여배우가 인기를 끄는 게 일반적이라 하지원의 사례는 무척 이례적이다”라고 설명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한국형 여전사’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부모가 없거나 가난한 가정환경을 극복하는 ‘캔디형’ 캐릭터는 하지원의 액션연기가 부각되지 않았던 데뷔 초반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특징이다.

강 평론가는 “전사이긴 하지만 캔디의 이미지가 더해진 덕분에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며 “하지원이 맡은 배역들은 체력적으로 강인하더라도 동시에 어려운 환경에 놓인 이들이었다. 더불어 남성에게도 위협을 주지 않는 캐릭터여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하지원이 액션 연기를 선보였던 작품들의 흥행 성적은 좋은 편이다. 스턴트우먼으로 와이어 액션을 선보였던 ‘시크릿 가든’은 평균 시청률이 24.4%, 조선시대 여형사로 나왔던 ‘다모’는 19%, 북한 특수부대 장교를 연기했던 ‘더킹 투하츠’는 11.9%로 모두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다. 에어로빅 선수로 나온 영화 ‘색즉시공’이 408만3000명, 권투선수로 나온 ‘1번가의 기적’이 275만 명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영화 16편의 누적 관객수 합계가 3000만 명을 넘는다. 주연작 기준으로 여배우 중 가장 큰 티켓파워를 자랑한다.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여전사’를 찾는 드라마나 영화는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하지원을 대체할 만한 여배우는 없다. 이 때문에 하지원과 연기호흡을 맞추는 상대 남성 배우는 계속 어려지고 있다. ‘시크릿 가든’의 상대역인 현빈은 네 살 연하, ‘더킹 투하츠’의 이승기와 최근 ‘기황후’의 지창욱은 그녀보다 아홉 살 연하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평가한 하지원의 액션 “하지원이 권투한다면 이시영 이길 것”▼

현정화 한국 마사회 탁구단 감독


영화 ‘코리아’를 찍기 전에는 탁구채를 잡는 방법도 몰랐는데 3개월 준비하면서 아마추어 선수 수준으로 성장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탁구 자세가 나와 너무 흡사하다고 놀랐을 정도다. 당시 몸 상태가 무척 안 좋았는데 매일 3∼4시간씩 고된 훈련에 빠짐없이 참석할 만큼 성실했다.

김민수 무술감독

운동신경이 상당히 발달됐지만 30대 중반이면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을 텐데 노력으로 극복하는 타입이다. 보통의 여배우와 달리 액션장면과 장면이 어떻게 연결될지, 그때 감정선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도 남자 배우들 못지않게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액션장면이 더 뛰어나 보이는 거다.

정문호 거인체육관 관장(복싱 지도자)

다른 배우들을 가르친 적도 있는데 하지원은 근육의 질이나 훈련에 임하는 자세, 성실함의 정도가 전혀 달랐다. 배우라기보단 선수에 가깝다. 훈련 두 달쯤 지났을 때는 실제 권투 경기를 권했을 정도다. 요즘 이시영이 권투로 뜨고 있지만 하지원이 권투를 한다면 하지원이 이긴다고 본다.

한동길 트레이너

동작을 배울 때 원리를 생각하면서 체득한다. 공을 던져줄 때 보통 사람은 그냥 받기에 급급하다면, 하지원은 공의 강도가 다른 것을 느끼면서 받는다. 몸 쓰는 것 자체를 즐기는 타입이다. 영화 ‘7광구’를 준비하며 실내 암벽등반을 했는데 작품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 마니아급으로 마스터했다.

곽용근 안무가

청바지 CF를 찍을 때 안무를 지도했다. 수많은 배우를 만났지만 가장 뛰어났다. 예컨대 전지현이 자신의 느낌을 살려 표현하는 타입이라면 하지원은 안무가가 의도한 느낌을 그대로 살려낸다. 박자감, 정확도가 훈련이 돼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이돌 그룹에 들어갔어도 잘했을 것 같다.

윤제균 영화감독

‘색즉시공’에서 에어로빅 선수 역할을 했을 때 당시 에어로빅 국가대표 코치가 ‘6개월만 더 하면 세계선수권 대회에 나갈 수 있다’고 말했고, ‘1번가의 기적’ 때는 세계챔피언 출신 변정일 씨가 ‘6개월 뒤엔 세계챔피언도 가능하다’고 했을 정도다. 언제나 기대 이상으로 준비해 와서 놀라게 하는 배우다.
#하지원#캔디형 여전사#다모#시크릿가든#기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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