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판단했어요. 기대만큼, 아니 그 이상 해 주고 있어 고맙죠. 참, 주전이지만 지금처럼 막내 역할도 잘해야겠죠.”(박미희 감독·51)
“무릎 부상 전력이 있어 걱정했는데 1순위로 뽑혀 좋았죠. 이제 그건 과거의 일이고 앞으로가 중요해요. 많이 발전하고 싶어요.”(이재영·18)
지난 시즌 꼴찌 흥국생명이 올 시즌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1년 전과 달라진 점을 굳이 두 가지만 꼽는다면 감독이 바뀌었고, 꼴찌를 한 덕분에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레프트 이재영이 합류했다는 것이다. 박 감독은 “재영이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잘해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명여고 졸업 예정인 이재영은 오래전부터 흥국생명의 상징인 ‘핑크색 유니폼’을 머릿속에 그려왔다. 우상인 김연경(26·터키 페네르바흐체)이 흥국생명 출신이기 때문이다.
“대표팀에서 연경이 언니를 만났을 때 정말 기뻤어요. 배울 게 너무 많았죠. 연경 언니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연경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이재영은 올 신인 선수 가운데 단연 돋보인다. 1라운드에서는 전국체육대회 출전 등으로 3경기나 출전하지 못해 내세울 만한 기록을 못 세웠지만 2라운드(5경기) 성적은 화려하다. 득점(77점)과 공격 성공률(42.8%) 모두 국내 선수 가운데 1위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서브 리시브를 하고 싶다’는 야무진 소망처럼 리시브 등 수비에서도 제 몫을 하고 있다.
“2라운드 국내 선수 가운데 1위? 그건 몰랐어요. 남은 경기에서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그러면 음…, 신인왕뿐만 아니라 최우수선수(MVP)도 가능하지 않을까요?(웃음)”
남녀를 통틀어 신인상과 MVP를 동시에 거머쥔 선수는 2005∼2006시즌 흥국생명의 김연경뿐이었다. 고교 1학년 때부터 일기장에 ‘연경 언니처럼 하자’고 적곤 했던 이재영으로서는 배구에 관한 한 김연경의 모든 것을 따라가고 싶은 듯했다.
현재 프로 종목 유일의 여성 사령탑인 박 감독도 간절한 목표가 있다. 3시즌 연속 하위권에 머물렀던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것이다.
“여성이라 주목받는 게 부담스럽지만 지도자를 생각하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꼭 해내고 싶어요. 일단 1, 2라운드 첫 고비는 잘 넘긴 것 같네요.”
박 감독은 예전부터 이재영을 알고 있었다. 후배 선수이기 이전에 친한 후배의 딸이어서다. 휴대전화에는 이재영의 어머니 김경희 씨(48)와 선수 시절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재영이 엄마와는 대표팀에서 같이 뛰었죠. 종종 연락을 하는 사이였지만 딸의 감독으로까지 인연이 이어질 줄은 몰랐어요. 그렇다고 재영이에 대한 특별대우(?)는 당연히 없죠. 팀의 주공격수로서, 막내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관리해 주는 게 제 역할이니까요. 다행히 재영이도 선배들에게 잘하고 선배들도 재영이를 잘 챙겨줘요.”
이재영은 얼마 전 작은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달 26일 쌍둥이 동생이 뛰고 있는 현대건설과의 경기가 여자 프로배구 사상 가장 높은 1.31%의 시청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세터인 동생 다영은 이재영에 이어 전체 2순위로 현대건설에 입단했다. 이재영은 자신의 한 경기 최다인 24점을 올리며 맹활약했지만 경기는 현대건설이 이겼다.
“늘 함께 뛰던 다영이와 적으로 만나니 기분이 묘했어요. 져서 아쉽긴 했지만 저나 다영이나 모두 잘하면 좋죠. 신인왕을 놓고 경쟁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이길 겁니다. 현대건설을 만나면 흥국생명이 이겨야 되고요.”
감독은 프로 여성 사령탑 첫 성공 사례에 도전한다. 막내 선수는 ‘신인왕-MVP 동시 석권’을 노린다. 33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배구만 생각하는 두 여자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김연경이 떠난 이후 침체됐던 흥국생명은 제2의 전성기를 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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