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렇게 사는 게 힘들었니?” “쓰레기를 갖고 무얼 하겠다는 거야. 그냥 돈 몇 푼 주고 새것 사는 게 훨씬 낫지.” “불쌍해라….”
박미현 씨(30)가 7년 전 재활용품을 이용해 가방이나 배낭을 만드는 회사를 세우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대략 이랬다. ‘업사이클(upcycle)’이란 개념조차 생소하던 그때, 쓰레기를 이용해 뭔가 해보려는 박 씨는 그저 ‘폐지 줍는 여자’ 정도로 인식될 뿐이었다.
정치학을 전공한 뒤 2008년 시민단체에서 일하던 박 씨는 각종 행사 뒤 버려지는 현수막들이 아까웠다. 창고에 쌓아 놨다가 한꺼번에 버려지는 양이 ‘어마어마하다’고 느꼈다. 특별히 공들여 준비했던 행사의 현수막 천을 잘라 가방을 만들어봤다. 행사를 소개하는 글씨의 일부가 가방 앞부분에 무늬처럼 담겼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가방. 그 특별함에 대한 전율이 박 씨가 업사이클 업체 ‘터치포굿’을 설립하게 된 계기였다.
쓰레기에서 뽑아내는 새로운 가치
업사이클은 재활용이라는 의미의 ‘리사이클(recycle)’과 업그레이드(upgrade)를 합친 조어로, 재활용품에 디자인을 가미해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이 개념은 환경보전과 재활용 캠페인의 흐름을 타고 이제는 꽤 인식이 확산된 편. 현재 국내 업사이클 업체는 40여 개로 늘어났고 최근에는 한국업사이클디자인협회도 만들어졌다.
7년이 지난 지금 터치포굿은 1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연간 5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는 ‘수능, 딱 붙으세요’라는 문장을 넣어 만든 접착식 메모지로 히트를 쳤다. 서울대 학생과 교수들이 쓰고 버리는 이면지를 모아서 포스트잇처럼 만든 뒤 “서울대의 기운을 받으라”고 입시생들에게 세일즈했다.
“입시를 앞두고 가고 싶은 대학의 돌도 주워 온다는데 차라리 그 학교 학생과 교수님들이 쓰던 종이가 낫다고 생각했지요. 교수님들한테는 일일이 이메일을 보내서 협조를 호소했어요. 학교 측의 도움을 받아 이면지 수거함을 만들었는데 자원을 아낀다는 점에서 호응도 좋았어요.”
20년간 자원봉사를 하면서 입었던 작업복 조끼로 만든 가방, 몇 달간 밤을 새워가며 준비했던 졸업작품전의 현수막을 뜯어내 만든 에코백 기념품 등 특별한 추억을 담은 맞춤형 제품들도 선보였다. 선거가 끝난 뒤 “우리 후보님 얼굴 보이게 만들어 주세요”라는 주문을 받고 제작한 현수막 기념 가방도 있다. 당선자들에게는 공약을 지키도록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있다는 게 박 씨의 자랑이다.
업사이클 상품들은 재활용품을 이용한 친환경 제품이라는 점에서 환경 분야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액세서리 제작업체인 클라우드잼은 버려지는 자투리 가죽을 재료로 쓴다. 큰 조각을 잘라내어 밴드형 제품을 만들고 난 뒤 생기는 작은 가죽 쪼가리들은 납작한 구슬처럼 꿰어 다시 팔찌로 만든다. “일이 끝나면 작업실에는 가죽 가루만 남는다”는 게 박주영 대표(39)의 설명이다.
“가죽공예 강사로 일하다가 어느 날 무심코 사용했던 가죽제품이 어떤 생명의 피부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날이 있었어요. 직업을 바꿀까 심각하게 고민했죠. 지금 하는 일은 생명의 희생 없이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좋아요. 디자인에 분홍돌고래 같은 멸종위기 동물을 사용해 환경보호 인식을 높이는 방법도 고민 중이에요.”
‘바다보석’이라는 업체는 해양쓰레기를 재활용하겠다는 취지에서 해변가의 유리조각을 주워 목걸이나 인테리어 소품으로 만든다. 마라톤대회가 끝난 후 버려진 수천 개의 생수 페트병을 녹여 담요를 만들고, 버려지는 잡지나 영화 포스터를 돌돌 말아서 액세서리용 비즈로 탈바꿈시키는 업체들도 있다. 이들의 작업장에서는 군 낙하산이 배낭으로, 전자결재의 상용화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결재판이 콘센트 태그로 재탄생한다. 재활용되는 폐품의 양이 때로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로 적은 경우도 있지만 업사이클러들은 “우리의 활동이 보내는 메시지에 주목하라”고 강조한다.
“환경보호 ‘강박’에 눌리지는 않아”
업사이클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두 환경지킴이를 자처하는 것은 아니다. 폐자전거 부품으로 벽걸이 시계를 만드는 리브리스의 장민수 대표(29)는 “환경 문제는 잘 몰랐고 그저 뭔가 가치를 새로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기계자동차공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 3학년 때 집 옥상에서 창업했다. 환경 이슈는 이 일을 하면서 뒤늦게 관심을 갖고 배워나가는 중이다.
터치포굿의 박 대표는 아예 “나는 환경론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또 경계한다”고 말했다. 업사이클을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재활용품만 써라”고 강요당하거나 “왜 일회용품을 쓰느냐”는 식의 비판을 받는 게 싫다는 것이다. 2012년 ‘열혈 환경론자’인 동료와 말다툼을 벌이던 한 직원은 “아침마다 카푸치노 한 잔을 들고 걸으면서 출근하는 인생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다”며 결국 사직했다.
“종이컵을 버리기만 해도 죄책감이 들고, 무조건 아껴야 할 것 같으니까 부담 되고…. 사람들이 환경 문제를 부담스러워하고 외면하는 이유가 이런 거죠. 그런 역효과를 줄이려면 강요하지도 공격하지도 투쟁하지도 말아야 해요. 소비라는, 자연스럽지만 강력한 수단으로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업사이클디자인협회의 회장이기도 한 박 대표는 환경 관련 강연을 다닐 때마다 “헤어스프레이나 종이컵에 담긴 커피처럼 자신이 정말 필요하고 원하는 것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 대신 다른 분야에서 자기가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더 신경 써서 하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국의 프라이타크’를 꿈꾸는 사람들
업사이클 회사들은 수익성 측면에서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1인 회사들이 사실상 가내수공업 형태로 운영하는 곳도 많다. 그래도 이들은 ‘한국의 프라이타크(Freitag)’를 꿈꾼다. 스위스의 유명 업사이클 업체 프라이타크는 이들에겐 벤치마킹 모델이자 동경의 대상이다.
마르쿠스와 다니엘 프라이타크 형제도 1993년 이 회사를 처음 만들 당시 환경보호에 가슴이 뜨거웠던 것은 아니었다. 찢어지지 않는 강하고 튼튼한 가방을 만들 방법을 궁리하다 스위스의 고속도로를 오가는 트럭에 눈길이 꽂혔다. 대형 트럭 전체를 감싼 방수포 덮개를 보고는 “바로 이거다!”라며 무릎을 쳤다.
그렇게 시작한 프라이타크는 현재 150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전 세계 460개 매장을 운영하는 탄탄한 글로벌 업체로 성장했다. 연간 20만 개의 가방을 판매해 500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 매년 35만 t의 방수포와 1만8000개의 자전거 튜브, 15만 개의 중고 안전벨트 버클을 재활용하는 기록을 세우며 ‘친환경 기업’의 이미지도 굳혔다.
또 다른 국내 업사이클링 업체 ‘이자인원오원’의 김유화 대표(28)는 “제품을 만드는 것 외에 업사이클링에 대한 소개를 중심으로 환경 문제의 인식을 제고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강연, 워크숍에 참여하는 것도 우리의 주요 사업”이라며 “장기적으로 회사를 키울 기회와 가능성이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설명을 마친 김 대표가 자신이 직접 만든 반지를 하나 내밀었다. 쓸모없게 된 커피콩을 박아 만든 반지였다. 노랗게 칠을 입힌 커피콩이 황금처럼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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