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작년 이맘때 잡지의 커버스토리로 3D 프린팅을 다뤘다. ‘제조혁명’ 등의 수식과 함께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는 신기술을 역사부터 응용까지 다각도로 다룬 특집이었다. 기사가 나간 뒤에 전문가를 초청해 독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했는데, 그때 한 전문가가 지나가면서 한 말이 꽤 충격적이었다. 3D 프린터로 만든 제품의 독성 문제가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화려한 조명에 정신이 팔려 이면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머리를 쳤다. 기술을 다룰 땐 항상 그 사회적 여파를 고민하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는데,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섭씨 200도가 넘는 온도로 일종의 플라스틱을 녹여 굳히는 게 대중적인 3D 프린터의 원리였다. 해로운 물질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당시 특집을 담당했던 기자가 이 문제를 파고들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국내외에서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다. 대중적으로 많이 쓰이는, 플라스틱 필라멘트를 녹여 굳히는 방식(재료 압출)의 3D 프린터는 폐 속 폐포나 간, 뇌까지 도달해 손상을 일으키는 초미세먼지가 문제였다. 학교 교실의 4분의 1 정도 되는 실내에서 프린터를 작동시켰더니, 가스레인지로 조리를 할 때나 담배 한 개비 태울 때 나오는 것과 비슷한 수의 초미세먼지가 나왔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윤충식 교수팀과 함께 직접 실험도 해봤는데, 초미세먼지 입자 수는 3D 프린터 가동 후 국지적으로 약 90배까지 증가했다.
아무리 조리할 때 수준이라고 해도 대상은 플라스틱이다. 고온으로 녹일 경우 포름알데히드나 프탈레이트 등의 발암물질과 내분비 교란물질이 발생할 수 있다. 더구나 어린이는 체구에 비해 호흡량이 많은 데다, 면역체계가 완성되지 않아 더 취약하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었다. 방과후 교실 등에서 3D 프린팅 교육을 할 경우엔 환기 등의 주의가 필요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내에서 많이 쓰는 재료(폴리젖산 수지)는 다른 재료에 비해 초미세먼지를 10분의 1 수준으로 적게 배출해 덜 해롭다는 점이다. 하지만 안료 등 다른 첨가제가 들어가 있는 데다, 재료가 불분명한 저가 재료도 유통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주로 산업용으로 이용되는 고급 제품의 3D 프린터도 문제가 있다. 재료를 가루로 만든 뒤 접착제로 굳히는 방식의 경우, 완성품의 강화를 위해 순간접착제를 덧칠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유해할 때가 많다. 빛을 쪼여 액체 상태의 재료를 굳혀 원하는 형태를 만드는 방식은 안에 들어간 재료 가운데 일부가 유독하다. 이렇게 만든 피규어 등 일부가 가정에서 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산업체에 장기간 근무하며 제작을 담당하는 근로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왜 아직 문제 제기가 없었을까. 독성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도 최근에야 주목받기 시작했다. 연구 결과도 이제야 서서히 나오고 있다. 다행히 정부와 기업도 문제성을 인식하고 유해성과 품질, 안정성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과학자들도 대체 재료를 개발하거나 미세먼지가 날리지 않는 밀폐형 프린터를 개발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관련 연구자가 머리를 맞대는 자리도 만들었다니 결과를 기대해 봐야겠다.
어떤 대상에 대해 데이터 없이 무조건 해롭다거나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용하다. 데이터에 기반한 제대로 된 표준이 있어야 최소한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3D 프린터는 사회에 미칠 파급력이 큰 만큼, 안전성과 관련한 표준을 초기에 확실히 정해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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