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이 초래한 ‘태화강 갯버들 벌목사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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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남구청 ‘홍수예방’ 공문 받고, 환경부서와 상의 없이 일방 작업
벌목 하루만에 시민 항의로 중단

울산 태화강 삼호교 부근에 자생하는 갯버들과 버드나무가 홍수 예방을 위해 베어진 채 강가에 쌓여 있다. ‘환경 훼손’을 우려한 시민과 환경단체의 반발로 공사는 중단됐다. 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울산 태화강 삼호교 부근에 자생하는 갯버들과 버드나무가 홍수 예방을 위해 베어진 채 강가에 쌓여 있다. ‘환경 훼손’을 우려한 시민과 환경단체의 반발로 공사는 중단됐다. 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한국의 대표적인 ‘생태 하천’으로 불리는 울산 태화강. 이 강에 자생하는 나무가 최근 벌목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홍수 예방’이 이유였지만 벌목 작업은 울산시의 환경 관련 부서와의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드러나 하루 만에 중단됐다.

태화강 삼호교 부근에서 벌목 작업이 이뤄진 것은 2일. 울산 남구청 발주로 민간 업자가 중장비와 전기톱 등을 동원해 강 중간에 자생하는 갯버들과 버드나무를 베어 낸 뒤 뿌리까지 파냈다. 느닷없는 전기톱과 중장비 소리에 놀라 백로 등 철새들이 달아나기도 했다. 벌목 작업은 시민 제보를 받고 출동한 환경지킴이들의 항의로 한나절 만에 중단됐지만 20여 그루가 잘려 나간 뒤였다. 개중에는 지름 30cm가 넘는 것도 있었다.

남구청의 벌목 작업은 울산시로부터 받은 공문 때문이었다. 시 재난관리과는 지난달 30일 ‘홍수 피해 방지를 위해 유수(流水) 지장물을 제거할 것’을 각 구군에 통보했다. 하천을 관리하는 시 건설도로과는 예산 1억500만 원도 지원했다. 시의 공문에 명시된 ‘제거’는 강 중간의 나무를 벌목하라는 의미였다. 당초 나무 180여 그루 모두를 제거할 계획이었다.

시민과 환경단체의 항의가 빗발치자 남구청은 시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문의했다. 시는 7일자 2차 공문을 통해 ‘유속 저하로 침수 우려가 있는 지장물에 대해 적절하게 조치할 것’을 통보했다. 벌목을 의미하는 ‘제거’에서 ‘적절하게 조치’로 바뀐 것이다. 태화강 환경을 총괄하는 환경정책과의 의견은 이때 처음 물어본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단체의 의견은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다. 남구청은 2차 공문에 따라 벌목 대신 물 흐름에 지장을 주는 가지만 치기로 했다. 태화강을 ‘홍수관리’뿐만 아니라 ‘환경’ 차원에서 사전에 관련 부서와 논의가 있었으면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가 당초 벌목의 이유로 꼽은 ‘홍수 우려’도 과학적인 분석이 없었다고 환경단체는 밝혔다. 울산기상대에 따르면 1981∼2010년까지 30년간 울산의 연평균 강수량은 1277.1mm. 1981년부터 현재까지 36년 동안 하루 최고 강수량은 태풍 글래디스 때인 1991년 8월 23일 417.8mm였지만 태화강은 범람하지 않았다. 특히 대곡댐이 2005년 6월 완공된 후 태화강 상류에서 두 개의 댐이 가동되면서 둔치까지 침수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울산생명의 숲 윤석 사무국장은 “과학적인 조사도 없이 막연하게 ‘홍수 예방’을 내세워 태화강 환경을 훼손했다”며 “강에 자생하는 나무는 물 흐름을 느리게 하기 때문에 오히려 홍수 피해를 줄여 준다”고 했다.

:: 태화강 ::

울산 울주군 백운산 탑골샘에서 발원해 울산시내 47.54km를 가로질러 울산만으로 흘러든다. 1990년대 후반까지 각종 오폐수가 유입되면서 물고기 떼죽음이 빈번했지만 2000년부터 울산시가 추진한 태화강 회생 프로젝트 덕분에 1급수 하천으로 변모했다.

 
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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