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클럽데이’의 끝은 쓰레기 천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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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피처럼 널린 담배꽁초… 퀴퀴한 음식물 잔해… 흩날리는 홍보전단…

27일 동이 튼 직후 환경미화원들의 손길이 닿기 전 홍대앞거리. 전날 밤 ‘클럽 데이’의 후유증으로 쌓인 홍보 전단과 담배꽁초 등 쓰레기 사이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7일 동이 튼 직후 환경미화원들의 손길이 닿기 전 홍대앞거리. 전날 밤 ‘클럽 데이’의 후유증으로 쌓인 홍보 전단과 담배꽁초 등 쓰레기 사이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7일 오전 6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일명 ‘홍통거리’(홍대로 통하는 거리). 티켓 한 장으로 여러 클럽을 이용할 수 있는 ‘클럽 데이’(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다음 날 이 거리는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유학생과 중국인 관광객(유커·遊客)의 방문 증가로 평일에도 평균 15만 명이 찾는 이곳은 주말엔 30만 명 이상이 몰린다.

3시간 전만 해도 차가 못 다닐 정도로 북적였던 클러버들이 빠져나간 거리엔 담배꽁초가 탄피처럼 널려 있었다. 대충 묶은 봉지를 뚫고 나온 닭뼈 등 음식물 잔해와 퀴퀴한 토사물이 거리를 점령했다. 클럽과 파티명이 적힌 종이 팔찌, 홍보 전단, 명함, 쿠폰은 발길에 잘게 찢겨 바람에 흩날렸다.

‘홍대 놀이터’ 술판은 아침까지 이어졌다. 동이 틀 때까지 젊음을 불태운 청춘들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를 버렸다. 가게 앞 쓰레기를 공용주차장 쪽으로 몰아넣는 얌체 주인도 눈에 띄었다.
○ 취객들 귀가 후 늦게 청소

오전 9시. 30년째 환경미화를 하고 있는 박종태 씨(59)가 10년 차, 1년 차 동료와 함께 능숙한 손길로 비질을 시작했다. 평일엔 행인이 적고 선선한 새벽에 작업하지만 술판이 늦게 끝나는 주말에는 아침에야 청소를 시작한다. 비질을 할 때마다 나오는 먼지와 악취에 재채기가 계속 나왔다. 손으로 분리해야 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나 박스에서는 먹다 남은 음료와 아이스크림 국물이 터져 나와 얼굴과 신발에 튀었다. 박 씨는 “작업용 마스크가 지급되지만 금세 땀에 젖어 안 쓰는 게 낫다”고 말했다.

바닥에 눌어붙은 전단과 물먹은 박스 조각은 두 손으로 비질을 해도 꿈쩍하지 않았지만 박 씨와 동료들은 한 손에 쓰레받기, 다른 손에 비를 든 채 빠르게 이동하며 거리를 정돈했다. 쉬는 시간 기자가 박 씨의 빗자루를 빌려 도전했지만 이내 얌전히 청소도구를 내려놨다. 단 10분 작업에도 정수리부터 모든 땀구멍에서 땀이 났고 양팔과 어깨, 허리가 빠질 듯 아팠다. 신입 미화원들도 처음에 힘만 쓰다 요령이 생길 때까지 근육통을 달고 산다고 한다. 10년 차인 김모 씨의 손바닥에는 노란 굳은살이 손금처럼 길게 이어져 있었다.

작업하는 동안 물건을 실어 나르는 트럭과 택시가 눈에 띄게 늘었다. 뚜껑 닫힌 물통이 바퀴에 깔려 ‘뻥!’ 하는 소리와 함께 터졌다. 찌그러진 페트병을 주우러 가는 순간 트럭이 쌩하고 지나가는 아찔한 장면도 있었다.

청소 작업을 빤히 보면서도 불붙은 꽁초를 그냥 버리는 ‘무개념’인 사람도 많았지만, 자발적으로 청소에 동참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서포터스 ‘에코프렌즈’ 대학생 회원 5명은 이날 오전 7시부터 청소를 시작해 금세 50L 쓰레기봉지 3개를 채웠다. 조혜민 씨(22)는 “자기 동네에선 분리배출 잘하던 사람들도 홍대만 오면 분위기에 편승해 무분별하게 버리는 것 같다. 처음엔 쓰레기봉지를 언제 다 채울까 걱정했는데 5분 만에 한 봉지가 찼다”고 말했다.

10년째 ‘돈부리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강복례 씨는 대야 한 가득 얼음 커피를 내오며 “날마다 쓰레기장이 되는 거리를 깨끗이 치워주는 미화원들에게 최소한의 감사 표시”라고 말했다. 그는 “홍대에 놀러오는 사람들은 이방인처럼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를 버린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 홍대 포함한 서교동은 최고 ‘쓰레기동’

길이 500m에 불과한 홍통거리 미화작업은 시작한 지 3시간이 다 돼서야 끝났다. 작업구간 끝자락에 있는 클럽 밀집지역 잔다리로의 쓰레기는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추한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마포구 16개 동(洞) 전체 쓰레기 가운데 대략 26%가 홍대거리 등이 있는 서교동에서 나온다. 외지에서 이곳으로 유입되는 인구가 늘었고, 클럽 등 유흥시설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는 자치단체 예산으로 처리하는데 종량제 봉지 수익으로는 25% 정도밖에 충당할 수 없다.

김정일 마포구청 청소행정과장은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라는 생각이 문제”라며 “내가 놀고 간 자리는 깨끗이 치운다는 주인의식이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마포구는 홍통거리에서 이어지는 일명 ‘걷고싶은 거리’까지 무단투기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악취를 없애기 위해 지난달 음식물쓰레기 처리방식을 거점수거에서 가게 및 가구별 수거로 바꿨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클럽데이#홍통거리#시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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