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극(極)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격언이 떠올랐다. 분자생물학자이자 타고난 이야기꾼인 저자는 미시적 세포 단위와 거대한 세렝게티 초원 생태를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고 있다. ‘단순한 게 아름답다(Simple is beautiful)’고 했던가. 분자생물학에 혁명을 가져온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DNA 이중나선구조 논문이 한 장(128줄)짜리에 불과했듯, 저자도 이 분야 구루답게 복잡한 생물학 이론을 아주 간명하게 설명해냈다. 그래서 과학을 잘 모르는 일반인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왜 사람은 질병에 걸리는가’ 혹은 ‘왜 초원의 코끼리나 들소는 일정한 숫자가 유지되나’라는 질문에서 비롯됐다. 놀랍게도 이 두 가지 질문의 해답은 별개가 아닌 하나다. 바로 ‘항상성(homeostasis)’ 유지의 메커니즘이다. 예컨대 세포 단위에서는 각종 효소 분비를 통한 체내 온도, 산도, 혈당수치 등의 유지를 의미하고, 거시적 생태 단위로 확대하면 먹이사슬을 통한 개체수 유지가 된다. 놀라운 자연의 항상성 유지 메커니즘은 생명과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가능케 한다. 이를 저자는 체내 생리법칙과 거시적 생태법칙을 아우르는 공통의 ‘생명 논리’로 설명한다.
자연적 조절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우릴 기다리는 건 비극뿐이다. 예를 들어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이 조절 기능을 잃으면 당뇨병이 오며 세포가 적정 수준 이상으로 분열을 거듭하면 암 덩어리가 된다.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해양에서 극심한 녹조현상이나 개체수가 급격히 불어난 야생동물의 습격은 인간의 개입으로 생태계 균형이 붕괴됐을 때 발생하는 현상들이다.
이와 관련해 생명 논리를 파악해 인류에 기여한 생물학자들의 에피소드가 행간 곳곳에 적절히 녹아들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항상성 유지 메커니즘을 발견한 월터 캐넌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마흔다섯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의대 교수로 승승장구하던 캐넌은 쇼크사로 숨지는 병사들의 사망률을 낮춰 달라는 정부 요청을 받고 유럽 최전선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수많은 부상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인체 항상성 유지의 중요한 힌트를 발견하게 된다.
쇼크사를 초래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가 체내 산도(pH)임을 알아낸 것. 그는 산도가 높아지면 쇼크가 온다는 데 착안해 부상병들에게 베이킹소다(탄산수소나트륨)를 주입함으로써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목숨을 건 모험이었지만 상아탑 안에 안주했다면 거둘 수 없었을 업적이었던 셈이다.
이 책의 결론도 이론 소개에만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현실 참여를 지향하고 있다. 저자는 1000년 동안이나 아프리카를 괴롭힌 천연두가 1975년 세계 보건전문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지구상에서 종식된 사례를 자세히 소개한다. 백척간두에 이른 환경위기도 천연두 퇴치 사례처럼 각국이 연대해 치밀히 대응한다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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