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 38억 원은 크다면 큰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돈으로 한 해 장기기증자 1600여 명의 유가족은 고귀한 기증의 의미를 살릴 수 있게 됐고, 1800여 명의 이식 수혜자는 장기를 산 것 같은 마음의 짐을 벗을 수 있게 됐다.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받을 때 수혜자가 일부 부담해야 했던 적출 수술비를 앞으로는 건강보험이 책임진다. 수혜자가 뇌사자의 장기 적출비를 대납하는 관행이 순수한 기증 정신을 해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장기 이식 수혜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이 5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다음 달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종전엔 장기를 이식받는 환자는 △본인 수술비(3000만∼4000만 원) 외에도 △뇌사자의 장기 적출비(평균 550만 원) 중 10∼20%와 △장기 관리료(380만∼400만 원) 전액을 부담해야 했다. 여기엔 뇌사 판정비 등도 포함돼 있어 “이식 수혜자가 대납한 돈을 ‘장기 값’으로 여기게 된다”는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심한 경우 관련 비용을 뇌사자 가족이 먼저 부담한 뒤 장기가 수혜자의 병원으로 옮겨진 뒤에야 돌려주는 일도 있었다.
개정 시행령이 도입되면 장기 적출비에 대한 수혜자의 부담은 완전히 면제되고, 장기 관리료도 현재의 7∼14%만 내면 된다. “신체의 일부를 아무런 대가 없이 아픈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는 고귀한 장기 기증의 취지를 고려한 결정이다. 이번 조치로 수술비 부담을 덜 이식 환자는 연간 1800여 명, 소요될 건강보험 재정은 38억8000만 원으로 추산된다. 다만 살아있는 기증자의 장기를 적출하는 수술비는 여전히 이식 수혜자의 부담으로 남았다.
안규리 대한이식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은 “생체 이식 적출비도 건강보험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장기 기증자 추모의 날’을 만들어 생명 나눔 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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