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인 15일 오후 5시경 서울 종로구에 있는 주한 미국대사관 앞은 4000여 개의 빨간 우산으로 뒤덮였다. 온종일 100mm 가까운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진보성향 집회 참가자들이 촛불을 상징하는 빨간 우산을 일제히 펼쳐든 것이다. 당초 계획했던 미국대사관 ‘포위 집회’가 법원의 불허로 무산되고 비가 내리자 새로 만들어낸 집단행동이었다. 빨간 우산을 쓴 집회 참가자들은 미국대사관을 향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반대” “한미동맹 철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수백 개의 꽹과리와 큰북이 내는 굉음이 미국대사관 주변에 울려 퍼졌다. 광복절이지만 태극기를 든 집회 참가자는 보이지 않았다.
같은 시각 서울 종로구 대학로 주변에 모인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광복절에도 촛불시위대는 태극기를 들지 않는다. 태극기를 부끄럽게 여기고 촛불은 영광으로 생각하는 건 잘못”이라고 비난했다.
○ “사드 반대” vs “핵무장”…양극단 구호 난무
민주노총 등 진보성향 단체들은 이날 오후 2시부터 6시경까지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8·15 전국노동자대회’ ‘8·15 범국민평화행동’ 등의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 추산 약 1만 명(경찰 추산 약 7000명)이 참가했다.
노동자대회와 평화행동 등의 명칭을 내걸었지만 사실상 ‘사드 반대’를 주장하는 집회였다. 일부 참가자는 반미(反美) 구호를 외쳤다. 박석민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은 연단에서 “사드를 반드시 막겠다는 결의가 필요하다. 자주 없이 평화는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통일선봉대 관계자는 “상주군 사드부대까지 찾아가 사드 철회를 외치고 야만적인 환경영향평가를 온몸으로 막아냈다”고 말했다. 사드가 배치된 경북 성주군 주민 80여 명도 집회에 참석해 ‘사드배치 결사반대’가 적힌 피켓을 들고 호응했다.
일부 시위대는 주한 미국대사관 앞으로 몰려가 욕설을 하며 “박근혜도 우리가 쫓아냈다. 미국 놈의 명줄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소리쳤다. 광화문광장 옆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는 민중연합당이 ‘8·15 자주평화통일 결의대회’를 열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이석기 전 통일진보당 의원 등의 석방을 주장했다.
서울 대학로에서는 전군구국동지연합회 등 300여 개 보수성향 단체들이 모여 ‘8·15 구국국민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 “핵무장, 한미동맹 강화” 등의 구호를 외쳤다. “문재인 정권 퇴진” 등 반정부 구호도 쏟아졌다. 주최 측 추산 약 1만 명(경찰 추산 약 4000명)이 모였다. 이들이 든 태극기와 성조기가 대학로 주변 건물과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역사 내를 가득 메웠다.
○ 2만 명 도심 행진…도로 정체
진보, 보수 집회 참가자들이 각각 집회 후 행진을 하면서 서울 도심 일대에 극심한 교통 체증이 빚어졌다. 진보 집회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에서 세종로사거리를 거쳐 주한 미국대사관 앞까지 약 1km를 행진했다.
당초 미국·일본대사관을 둘러싸는 2km 구간을 행진하려 했으나 전날 법원의 불허로 미국대사관 앞까지 행진하는 것으로 경로가 바뀌었다. 당초 3개 차로를 점거해 행진할 계획이었지만 미국대사관 앞으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4개 차로의 차량 통행이 막혔다. 이 때문에 광화문 주변을 지나는 차량들이 오후 5시부터 1시간 가까이 ‘거북이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민중연합당도 세종문화회관에서 청와대 사랑채를 거쳐 서울광장까지 3.5km 구간을 행진하며 1, 2개 차로를 점거했다.
보수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6시부터 대학로에서 종로5가, 종각사거리, 을지로입구, 대한문 방향까지 2시간 동안 3개 차로를 점거해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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