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 시간) 핀란드 아우라 지역의 ‘안티카이넨 농장’. 한국에 프리미엄 돼지고기인 ‘오메가3 포크’를 수출하는 핀란드 최대 육류가공업체 HK스칸의 돼지 사육농장이다.
우리에 들어서자 돼지들이 동그랗게 말린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이곳 돼지들의 꼬리는 20∼50cm로 길다. 돼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는 습성 때문에 한국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미리 꼬리를 잘라버린다. 병균 감염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동물복지 사육 정책을 펼친 핀란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핀란드식 사육의 핵심은 동물의 행복이다. 안티카이넨 농장 분만실 바닥에는 갓 태어난 새끼들을 위한 온열시트가, 어린 돼지의 우리에는 공 같은 장난감이 있었다. 돼지를 괴롭히는 파리를 없애려고 살충제 대신 유충을 잡아먹는 벌레를 놓았다. 사료에는 농장에서 10km 이내에서 재배한 유기농 작물을 넣고 청소용 물과 식수를 따로 구분할 정도로 사육환경에 신경을 쓴다.
항생제도 단 세 가지만 사용한다. 병에 걸린 돼지만 최소한의 양을 처방받는다. 이날 항생제를 맞은 돼지는 전체 1600마리 중 1.25%인 20마리 남짓에 불과했다.
이런 사육 방식은 동물과 환경, 인간의 건강이 하나로 연결됐다는 핀란드의 ‘원헬스(one health)’ 철학에서 나왔다. 가축이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야 오염도 줄고 소비자도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유카 닉키넨 HK스칸 부사장(55)은 “정부가 항생제를 남용하지 못하게 엄격하게 관리한다. 핀란드 가축은 아플 때에만 항생제를 맞는다”고 강조했다. 핀란드 축산농가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스웨덴에 이어 두 번째로 항생제를 적게 쓴다. 독일은 핀란드의 7배, 스페인은 20배의 항생제를 사용한다. 특히 양계장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AI)가 유행했던 2009년 이후 항생제를 아예 쓰지 않는다.
이런 철학은 양계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유기농 양계업체 ‘루오무 노카’ 대표인 아르토 요키넨 씨(63)는 23일 기자와 만나 “살충제 계란은 핀란드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와 벨기에 등 일부 EU 국가의 계란에서 살충제가 검출됐지만 핀란드는 예외였다. 20년 전부터 닭들의 밀집사육을 금지하는 등 엄격하게 관리한 덕분이었다. 핀란드 계란이 항생제, 살모넬라, 유전자변형작물(GMO)이 검출되지 않는 ‘3무(無) 계란’으로 통하는 이유다.
그가 보여준 동영상에는 숲속에서 야생 베리를 뜯어먹는 닭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농장의 닭들은 부화한 지 6주가 지나면 사육장 근처의 숲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핀란드에서 ‘루오무(Luomu·유기농) 인증’을 받으려면 EU보다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EU는 가축의 이동과 충분한 자연광, 유기농 사료 비중(20%) 및 사용금지물질(질소비료와 성장촉진제 등) 기준을 만족시킨 식품만 유기농 인증을 하고 있다. EU는 유기농 닭의 사육장 크기를 m²당 최대 10마리로 제한한다.
하지만 핀란드에서는 일반 닭도 사육장 1m²에 9마리 이상 못 키운다. 특히 유기농 닭으로 인증받으려면 실내에서는 1m²에 6마리 이상 기르면 안 되고 닭 1마리당 4m²의 실외 공간도 함께 확보해야 한다. 유기농 닭 1마리당 확보해야 하는 실내 공간이 0.17m²로 한국의 철제 우리(0.05m²)보다 세 배 이상 넓다.
핀란드 식품안전청 ‘에비라’는 농장을 불시 방문해 사육환경을 점검한다. 농장주는 매주 수의사가 지적한 문제 등을 에비라에 보고해야 한다. 보고가 잘못되거나 누락되면 유기농 인증을 절대 쓸 수 없다. 유기농 생산 관리 결과는 매년 에비라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이날 헬싱키 K시티마켓에서 만난 소릴리 페야크 씨(50·여)는 “유기농 계란이 일반 계란보다 비싸지만 우리에 갇혀 자란 닭에서 나온 계란을 가족에게 먹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일반 계란의 가격은 kg당 2유로(개당 150∼200원) 정도지만 유기농 계란은 kg당 6, 7유로(개당 약 500원) 선으로 3배 정도 비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