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록체를 가진 인공혈액을 연구하던 과학자 재연(문근영)은 유리정원 안에 고립돼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후배에게 뺏긴 상처를 받은 뒤 상처받은 사람은 나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 따른 것이다. 그는 유리정원에 스스로를 가두고 엽록체 혈액 연구를 이어간다. 이는 25일 개봉한 영화 ‘유리정원’의 설정이다.
재연은 왜 혈액에 엽록체를 담으려 했을까. 광합성 공장으로 불리는 엽록체는 식물과 동물을 구별하는 대표적인 기준이다. 식물은 엽록체에서 태양빛을 생명에 필요한 에너지로 전환한다. 반면 동물은 식물을 섭취하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얻는다. 영화 속 설정처럼 혈액에 엽록체를 이식한다는 기발한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이론적으로는 음식을 섭취하지 않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
실제로 가능한 이야기일까. 이일하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육상 동물에게 구현하기는 어려운 아이디어”라고 일축했다. 엽록체가 체내에 이식된 후 계속 재생산되고 기능을 유지하려면 유전자가 약 3000개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을 비롯한 동물에겐 이 유전자가 없다. 엽록체를 이식해 스스로 광합성을 하려면 체내에서 식물 유전자까지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또 태양빛을 몸속으로까지 받아들이기 위해 피부가 투명해져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기발한 상상이 바다에선 현실이 된다. 이 교수는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영양분을 생산하는 생물을 ‘독립영양체’라 하고 다른 생명체를 섭취하는 방식으로 의존해 살아가는 생물을 ‘종속영양체’라 한다. 바다엔 이 두 특성을 모두 갖춘 생명체가 산다”고 설명했다.
해양 생태계에선 광합성을 하는 동물이 있음이 밝혀졌다. 산호는 바닷속 식물성 플랑크톤을 잡아먹은 후 소화하지 않고, 이들이 광합성으로 생산하는 에너지를 받아들인다. 또 물속에 알을 낳는 일부 도롱뇽은 알 속에 식물성 플랑크톤이 들어와서 알이 자라는 동안 에너지를 추가로 공급한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식물의 광합성 기능을 빌려올 뿐이었다.
2015년 학술지 ‘생물학회보’엔 놀라운 가능성이 제시됐다. 푸른민달팽이가 플랑크톤으로부터 엽록체를 빌려올 뿐만 아니라 엽록체 유지에 필요한 유전자까지 가져온다는 설명이다. 나뭇잎과 비슷한 외형을 가진 푸른민달팽이는 본래 투명한 피부로 태어나지만 자라면서 초록색이 된다. 플랑크톤을 몸속에 수개월 동안 살려둔 채 광합성을 하기 때문이다. 연구를 주도한 시드니 피어스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 교수는 “푸른민달팽이가 유전자를 받을 뿐만 아니라, 받은 유전자를 자손에게 일부 물려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진화를 거듭하다 보면 먼 미래엔 스스로 엽록체를 생산해 광합성을 하는 동물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일부 과학자는 고등동물에 광합성을 구현해 식량난을 해결하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물고기가 주요 대상이다. 실제로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2011년 제브라피시의 알 안에 엽록체를 가진 미생물을 주입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물고기는 알에서 부화한 뒤에도 2주 정도 엽록체를 보유했다. 엽록체가 몸속에서 증식하진 못했지만 짧은 기간이라도 물고기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윤환수 성균관대 교수는 “푸른민달팽이 외에도 아메바의 일종인 폴리넬라 역시 다음 세대에 엽록체를 물려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화 속 설정이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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