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디는 지 뱃속에다 새끼를 키우는 기라, 새끼는 다 자랄 때꺼정 지 어미속을 조금씩 갉아묵는다 안 카나, 그라모 지 어미 속은 텅 비게 되것제, 그 안으로 달이 차오르듯 물이 들어차면 조그만 물살에도 견디지 못하고 동동 떠내려간다 안 카나, 연지곤지 찍힌 노을을 타고 말이다, 그제사 새끼들은 울 엄마 시집간다꼬 하염없이 울며 떼를 쓴다 안 카나’
고디는 다슬기의 경상도 사투리다. 새끼에게 속을 다 비워주고선 둥둥 떠내려간다는 다슬기 어미 이야기가 풍성하고도 애틋한 경상도 사투리로 풀려 나온다. 신철규 시인(38·사진)의 ‘울 엄마 시집간다’ 중 한 대목이다.
한국 시어의 아름다움은 지역의 사투리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문단에 나온 젊은 시인들에겐 이런 시편들이 희귀하다. 저출산과 도시화로 시골에서 성장한 이가 크게 줄어들어서다.
“경남 거창 해발 500m 고지대에서 아버지가 사과 농사를 지었습니다. 겨울 들어설 무렵이면 신작로 삼거리에서 매상을 했어요. 한 학년이 7명뿐인 초등학교를 다녔고요.”
신 시인은 사과를 따고 벼 포대를 메고 경운기를 몰면서 자라났다. 스스로 “농사 경험을 한 마지막 세대의 문인일 것”이라고 말한다. 읽을 책이 없는 환경이어서 교과서와 만화만 봤던 그는 읍내 고등학교에 진학해서야 인근 서점에서 시와 소설이라는 걸 처음 읽었다. 그 뒤론 용돈을 아껴서 1, 2주에 한 권씩 책을 샀다. 공대에 입학했다 한 달 만에 자퇴하고 재수해서 국문과를 가도록 이끈 것도 책이었다.
그의 작품은 “세상의 슬픔을 증언하기 위해 인간의 말을 배운 천사의 문장으로 쓰인 시”(평론가 신형철)라는 평을 받는다. 실제로 그의 지난해 첫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에선 동물원을 탈출했다 마취 총을 맞은 기린,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타워팰리스 인근 빈민가 아이 등이 시집 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에는 사회에 대한 날 선 비판의식이 있다. 노랫가락 같은 사투리로 쓰인 시편들에도 성장기에 그가 가족에게서 받았던 상처가 담겨 있다. 최근 신 시인의 시 ‘심장보다 높이’는 동료 문인 100명이 뽑은 ‘오늘의 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앞선 세기 문인들과의 차이점에 대해 신 시인은 “선배 문인들은 대중보다 먼저 알고 먼저 깨달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졌지만, 21세기 대중은 작가보다 책도 더 많이 읽고 더 똑똑한 이가 많아서 작가가 대중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그럼에도 작가가 의미 있는 존재인 것은 현장에 끝까지 남아서 마지막까지 기억하려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상처를 찾아내고 오랫동안 눈길을 주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작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문학의 의미를 묻자 신 시인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폭력이 아니라 언어를 쓴다는 것”이라면서 “문학은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방편을 얻게 해준다.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옮겨갈 수 있는 경험의 기회를 언어를 통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단어 하나의 소중함을 인식하면서 듣고 읽는 것은 사랑과 문학의 공통점”이라면서 “그런 면에서 연애할 때도 도움을 준다고 할 수 있겠다”며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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