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그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놀랄 만한 업적을 세운 것도 아니고 자랑할 만한 지위에 있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두 분은 후손들에게 사람으로서 도리가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김동진 지사의 딸 김연령 여사(63)는 15일 베이징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 지사는 임시정부를 위해 일한 공훈을 인정받아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 지사의 아버지 김석 선생은 공훈을 입증할 자료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김 여사는 할아버지를 아버지보다 더 큰 희생과 헌신을 한 독립운동가로 기억하고 있다.
1870년생인 김석 선생은 일본 와세다대에 유학한 뒤 서울로 돌아와 흉부외과 의사 생활을 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독립운동에 뛰어든 그는 1919년 3·1운동 직후 일본 헌병의 추격을 피해 중국으로 떠났다. 중국에 도착한 뒤엔 중국 학생과 청년들을 상대로 한 항일 강연에 매진했다. 일본에 빼앗긴 조국의 현실을 통해 중국 청년을 일깨우고 항일운동에 동참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김 여사는 “할아버지는 1919년부터 1933년 돌아가시기 전까지 14년의 세월 동안 일본의 죄악을 알리고 중국 인민들이 한민족의 독립을 지원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수천 회의 강연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김 선생은 1933년 여름 일본 공작원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은 뒤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
김 여사의 아버지 김동진 지사는 1941∼1945년 임시정부를 위해 일했다. 주석 판공실 비서와 생계(生計)부 비서 등을 지냈다. 김 지사는 광복된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복잡한 국내 정치 상황으로 인해 끝내 귀국을 하지 못하고 1949년 베이징에 정착해 교사로 활동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온 김 여사는 가족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결심했다. 김 여사는 2000년 중국 국유기업에서 퇴직한 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오랜 작업 끝에 2015년 2대에 걸친 독립운동사를 담은 저서 ‘아리랑은 피가 뜨거운 것이다’를 완성했다. 김 여사는 “예전에는 가족들은 내버려둔 채 나라 구하겠다고 뛰쳐나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해가 안 됐다”며 “책을 쓰면서야 서서히 그분들의 생각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이날 아들 김과 씨(35), 사촌동생 곽광 씨(59), 5촌 조카 곽재호 군(15)과 함께 베이징 차오양구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광복절 행사에 참석했다. 주중 한국대사관이 광복절 행사에 독립유공자 가족들을 초청한 것은 처음이다. 김 여사는 “아들과 5촌 조카에게 한민족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뜻깊은 행사에 함께 참석했다”며 “후세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바친 선조들의 헌신과 노력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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