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깊어진 ‘흥’과 ‘한’… 퓨전국악 시대 다시 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4일 03시 00분


웰메이드 음반 잇달아 발매

한국의 월드뮤직이라고 할 수 있는 퓨전국악이 지난해부터 다시 활발하게 발매되고 있다. 해금뿐 아니라 생황, 거문고, 가야금, 
국악가곡까지 다양한 국악기들이 동시대 음악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뚜렷한 메시지를 던지는 음반이 많이 나오고 있다. [1] 가야금 
연주자 류지연 [2] 해금 연주자 정수년 [3] 생황 연주자 김계희 [4] 가야금 연주자 백은선 [5] 대금 연주자 한충은. 
송기철 씨 제공
한국의 월드뮤직이라고 할 수 있는 퓨전국악이 지난해부터 다시 활발하게 발매되고 있다. 해금뿐 아니라 생황, 거문고, 가야금, 국악가곡까지 다양한 국악기들이 동시대 음악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뚜렷한 메시지를 던지는 음반이 많이 나오고 있다. [1] 가야금 연주자 류지연 [2] 해금 연주자 정수년 [3] 생황 연주자 김계희 [4] 가야금 연주자 백은선 [5] 대금 연주자 한충은. 송기철 씨 제공
중학교 시절 빌보드 차트를 복사해 보며 팝음악의 세계를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몇 해 전 쿠바에 갔을 때 아바나의 한적한 동네 젊은이들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직접 연주하면서 춤을 추던 모습은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또한 브라질에 갔을 때는 방탄소년단의 음반이 우리 돈으로 약 5만 원이나 되는 고가에 팔리고 있는 것도 보았다. 케이팝은 이제 세계 팝음악의 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게 됐다.

그 경쟁력을 갖추기까지 약 20년 동안의 노력과 시행착오가 있었음을 국악계도 기억했으면 한다. 이제 국악도 보다 큰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 시장에 나설 때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월드뮤직이라 할 수 있는 ‘퓨전국악’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친숙해졌다. 국악기가 주인공이되 서양 악기와의 협연을 통해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선보인 앨범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퓨전국악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당시 해금 연주자 정수년의 음반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은 첫 번째 퓨전국악의 인기를 꽃피웠다. 강상구가 작곡한 타이틀곡의 큰 히트에 힘입어 앨범은 단숨에 수만 장이 팔렸고, 국악곡으로는 보기 드물게 광고에까지 쓰였다. 해금 명인 정수년의 연주력이 빛난 이 앨범은 퓨전국악의 수준 높은 음악성을 처음 알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5년 무렵부터 퓨전국악의 인기는 시들어갔다. 국악기로 서양의 유명 음악을 반주하는 듯한, 무르익지 못한 실력으로 앨범을 양산한 것도 큰 이유였다. 사실 퓨전국악이란 장르는 그 태생적 특성 때문에 국악과 여러 가지 요소를 섞을 순 있지만 잘 정리되지 않으면 이도 저도 아닌 ‘잡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작년부터 수준 높은 퓨전국악 음반들이 다시 발매되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은 것은 예전처럼 양악기를 배경으로 국악기 혼자 노는 듯한 동떨어진 느낌이 아니라, 자기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음악적 설득력이 뚜렷한 음반들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악기도 다양해졌다. 소위 해금이 뜬 이후 지나치게 해금 음반이 많이 나왔지만, 지금은 생황, 거문고, 가야금에서 국악앙상블과 국악가곡까지 다양해진 것도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다. 또한 전통을 충분히 익힌 중견 연주자의 작품과 당대의 음악적 흐름을 호흡하며 자란 젊은 뮤지션들, 그리고 뚝심 있는 몇몇 국악전문 음반사의 노력에 힘입어 퓨전국악은 다시금 부흥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대금·소금 연주자 한충은의 앨범 ‘숲’은 한국형 월드뮤직과 크로스오버의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리얼그룹과 아카펠라로 절묘하게 풀어낸 ‘진도아리랑’에선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다. 유럽의 특급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음반 속에는 우리의 ‘흥’과 ‘한’이 공존한다.

가야금 연주자 류지연의 ‘영훈 Meets 지연: 광화문연가 그리고 가야금연가’ 앨범은 가수 이문세의 히트곡을 가야금으로 재해석한 기획력이 매우 뛰어나다. 천재 작곡가 이영훈이 빚어낸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선율들이 류지연의 정갈하고 영롱한 가야금 연주로 다시 피어나고 있다.

생황 연주자 김계희는 ‘笙(생)의 노래’를 통해 안정감 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서양에서 ‘마우스 오르간’으로 불리는 생황은 국악기 가운데 유일하게 화음을 내는 경쟁력이 큰 악기다. 민요에서 이국적인 색채를 담은 창작곡까지 애잔하고 구슬픈 생황의 독특한 음색을 표현하고 있다. 가야금 연주자 백은선의 앨범 ‘바람의 악사’는 퓨전이란 의미에 매우 적합한 앨범이다. 가야금과 기타가 주를 이루는데, 두 악기의 궁합이 의외로 잘 맞는다. 퓨전국악에서 집시 스윙재즈까지, 앨범 전체에서 느껴지는 ‘밝은 슬픔’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직 이러한 앨범들이 놀라운 판매고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한 걸음씩 계속 앞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더불어 이제 우리 색깔이 오롯이 담겨 있는 퓨전국악이 ‘케이비트(K-Beat)’가 되어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송기철 음악평론가·KBS 쿨 FM ‘송기철의 심야식당’ 진행자
#퓨전국악#정수년#해금#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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