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언론사에서 이런 보도를 했습니다. “대한항공이 특정 엔진을 고집하고 있고, 그 엔진을 만드는 회사는 과거 조양호 회장이 리베이트를 받았던 회사”라는 내용입니다. 비판은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야 합니다. 하나씩 ‘팩트 체크’ 해보겠습니다.
●100% 특정 엔진만 사용?
기사에서는 대한항공에서 보유한 777 기종이 100% 특정 업체에서 만든 엔진을 사용한다고 보도했습니다. 기사의 문맥상 해당 업체는 미국의 엔진 제조사 ‘프랫&휘트니(Pratt&Whitney)’를 의미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이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 항공기 정보 사이트 ‘에어플리트’ 자료를 보면 현재 대한항공에서 운용하는 777기는 54대입니다. 그 중 해당 언론사의 보도처럼 PW에서 만든 엔진을 사용하는 비행기는 총 18대(33%)입니다. 정확히는 777-200ER 기종과 777-300 기종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 비행기들은 모두 2008년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2009년 이후 생산된 777-300ER 기종과 화물기인 777F 기종은 모두 제네럴 일렉트릭(GE)이 만든 엔진이 붙어 있습니다.
대한항공이 보유한 기종 중 PW 엔진‘만’ 쓰는 기종은 따로 있습니다. 보잉의 B747-400 기종과 에어버스의 A330 기종입니다. 대한항공은 화물기까지 합쳐 747-400을 6대, B777과 함께 대한항공의 3대 주력기종 중 하나인 A330을 29대 운용하고 있고 여기엔 모두 PW 엔진이 달려 있습니다. 최근 국내선과 단거리 국제선용으로 도입한 A220(구 CS300)에도 PW 엔진만 달려 있습니다.
대한항공이 보유한 비행기 전체로 영역을 넓혀 볼까요. PW를 쓰고 있는 항공기는 모두 합쳐 62대입니다. 대한항공이 보유한 비행기는 총 166대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기종은 모두 GE사의 엔진이거나, GE와 다른 회사들이 합작한 엔진 생산업체가 만든 비행기들입니다. (A380에 장착한 엔진은 GE와 PW가 합작해 만든 ‘엔진 얼라이언스’가 제작했습니다.)
오히려 B777 기종에 PW 엔진‘만’을 쓰는 국내 항공사는 따로 있습니다. 아시아나입니다. 에어플리트 자료를 보면 아시아나는 B777-200 9대를 영업에 투입하고 있는데, 모두 PW 엔진을 쓰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A330(15대)에도 모두 PW 엔진을 씁니다. 가장 많이 보유한 기종인 A320시리즈(25대)에 달린 엔진은 모두 인터내셔널에어로엔진(IAE)에서 제작했는데, PW가 지분의 25%를 가진 회사입니다. PW에 대한 집중도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아시아나가 더 높다는 의미입니다.
항공사에서 기종이나 엔진을 단일화하는 일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 아닙니다. 유지보수에 드는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저가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아예 600대가 넘는 비행기를 모두 B737로만 운용합니다. 만약 어떤 항공사에서 특별한 이유도 없이 엔진이나 기종을 다양화한다면 오히려 그런 사실이 비판을 받아야 할 겁니다. 높아진 유지보수 비용이 고스란히 항공권 가격을 높이는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다르다?
기사에서는 “일본항공이나 싱가포르 항공의 경우 5대 중 1대 꼴인 것과 대조된다”고도 언급했습니다. 1월 말 기준으로 보잉이 만든 각 항공사 B777 현황 자료를 살펴봤습니다. 일본항공의 B777 39대 중 PW 엔진을 단 기체는 총 15대(38.5%)입니다. 오히려 대한항공보다 비율이 높습니다.
B777 운용 규모가 57대로 대한항공과 비슷한 전일본공수(ANA)는 PW 엔진을 단 비행기가 35대입니다. 미국 국적사인 유나이티드항공은 B777 102대 중 60대가 PW 엔진을 씁니다. 싱가포르항공은 PW 엔진이 한 대도 없습니다. 기령이 오래된 항공기에는 롤스로이스(RR)가 만든 엔진을 달고 있습니다.
●PW의 리베이트를 받았다?
기사에서는 과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당시 대한항공 회장)이 과거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맥락상 리베이트가 엔진 대량 구매로 이어졌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순서가 바뀌어 있습니다.
기사에서는 조 회장이 리베이트를 받은 시점과 내용을 정확히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문맥상 1999년 한진그룹이 세무조사를 받을 때 함께 제기됐던 문제로 보입니다. 당시 국세청에서는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조 회장이 특정 엔진을 항공기에 장착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받은 리베이트(엔진가격 할인금액)를 해외 소재 금융기관을 통해 그 일부를 국내에 반입해 이 중 1685억 원을 세금 납부에 쓰거나 개인 경비로 유용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는 PW사가 엔진 계약에 따른 대가로 대한항공에 지급한 일종의 할인 금액인 ‘크레디트’를 조 회장이 ‘개인적으로 유용’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지 PW와 대한항공이 크레디트를 주고받은 것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은 아닙니다. 즉, 위법사항은 상거래나 공정거래 과정의 위법이 아닌 조 회장 개인의 횡령과 탈세입니다.
항공업계는 엔진이나 항공기 제작사가 대량 주문을 한 항공사에 ‘크레디트’를 지급하는 것은 불법이 아닌 항공사, 엔진 제작사의 영업 전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도 이 같은 크레디트 제도를 항공사가 구매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으로 소개해 크레디트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왜 PW에 집착했나
A330에는 GE의 엔진도 달 수 있고 롤스로이스(RR) 엔진도 달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공군이 최근 도입한 A330 기반 공중급유기 A330MRTT에 달린 엔진도 RR에서 만들었습니다.
다양한 엔진회사 중 왜 대한항공은 PW에 집착했을까요. 항공업계는 그 이유로 대한항공이 PW 엔진을 완전히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할 수 있을 정도의 정비 기술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과거 B747 기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사세를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B747에 처음으로 달린 엔진이 바로 PW사의 엔진입니다. 현대 제트 여객기에는 소음을 줄이고 연비는 높인 ‘고바이패스비 터보 팬’이라는 엔진이 표준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PW는 ‘JT9D’라는 역사상 첫 고바이패스비 터보 팬 엔진을 만든 회사입니다. 이 엔진은 B747 첫 모델에 장착됐습니다. 두 회사는 그 이후로도 B747의 성능을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한 기술을 공유해 왔습니다.
대한항공은 과거 B747을 도입하며 사세를 크게 확장한 회사입니다. PW의 영향 역시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관계는 현재까지도 이어져서, 대한항공은 2016년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에 PW와 합작해 세계 최대 규모의 엔진 테스트 시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어떤 엔진을 쓰나
해당 기사 말미에서 밝힌 것처럼 대한항공은 현재 PW 엔진 비중이 점점 줄어가고 있습니다. 이유는 대한항공이 구입하는 비행기에 PW 엔진을 달 수 없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대한항공은 2015년 이후 A330 기종을 구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대체할 수 있는 기종인 ‘B787 드림라이너’를 들여오게 됩니다.
이 B787 기종에는 PW 엔진을 달 수 없습니다. GE나 RR 중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한항공은 RR 엔진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RR은 엔진 정비를 특정 국가에 설치한 정비소에서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B787에 장착되는 RR의 엔진을 중정비(엔진을 스스로 정비할 수 있는 능력)하려면 무조건 싱가포르나 잉글랜드 더비에 가야 합니다. 경기 부천시에 원동기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대한항공에서 이런 방침이 달가울 리 없습니다. PW와 엔진 구조가 큰 틀에서 다르지 않은 GE와 달리 RR은 엔진 구조가 크게 차이나기 때문에 정비 기술을 익히는 데 비용은 더 들고 효율은 떨어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대한항공은 GE 엔진을 선택했습니다.
대한항공에 GE 엔진 비중이 늘어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최근 항공기 시장의 추세가 특정 기종에는 특정한 회사의 엔진만 달아 판매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한항공이 보유한 B777의 2009년 이후 생산분은 모두 B777-300ER입니다. ER은 ‘Extended Range’를 줄인 말로 항속거리를 늘렸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B777-300ER에는 GE의 엔진 외에는 어떤 엔진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반대도 있습니다. 아시아나가 최신 기종으로 꾸준히 도입하고 있는 A350 기종은 RR의 엔진만 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대한항공이 PW 엔진을 아예 안 도입하고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캐나다 봉바르디에에서 제작해 CS300이라는 모델명이 붙었다가 에어버스에서 지분을 인수하면서 A220으로 이름이 바뀐 비행기가 대한항공에는 9대 있습니다. 여기에는 모두 PW사 엔진이 들어갑니다. 이 비행기에 PW 외에 다른 엔진을 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대한항공을 비롯해 우리나라 저가항공사들(에어부산 제외)에서 수십 대씩 운용하는 B737 기종에는 CFM인터내셔널의 엔진이 들어갑니다. GE가 지분 절반을 보유한 업체입니다.
●PW는 쇠락하는 업체?
마지막으로, 그러면 PW는 쇠락하는 업체인지 알아보겠습니다. 1980년대까지 전 세계 민항기 엔진 시장을 호령했던 기세에 비하면 분명 PW는 그 위세가 과거에 비해 약해졌습니다. 다만 미국 경제산업 전문 매체인 마켓워치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PW의 항공기 엔진 시장 점유율은 21%입니다. RR이 18.5%, GE가 18.3%를 각각 차지하고 있습니다.
광동체용 신형 엔진은 내놓지 못하고 있지만, 중소형기 엔진에 대한 개발과 투자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조9000억 원 규모 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한 ‘기어드 터보팬’ 엔진을 생산한 업체도 PW입니다. 이 엔진은 A220 외에도 민항기 시장의 양대 베스트셀러인 A320의 업그레이드 기종인 A320네오(neo)에도 적용됩니다.
대한항공은 최근 수년간 회장 일가의 무책임한 발언들로 논란이 일었고 누구나 이에 대해 비판할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사만큼은 명확한 사실에 근거해야 합니다. 특히 가짜 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에 언론사라면 팩트에 더 신경 써야 할 겁니다.
‘날飛’는 최근 독자 여러분을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새해에는 더 자주, 더 정확한, 더 재미있는 항공과 날씨 소식을 들고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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