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외병’과 ‘내병’이 있다?…194cm 건장한 40대 아저씨, 폐렴에 걸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5일 16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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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것은 재미가 하나도 없다. 결코 추천할 일이 못된다. 지난달 어느 금요일에 오랜만에 공연을 보러 갔다. 호주인 개그맨의 ‘원맨쇼’였다. 오후부터 콧물이 약간 흐르고, 목이 칼칼해졌다. 이 두 가지는 증상은 평생을 느껴왔던 감기의 최초 징조이었다. 언제든지 그 ‘두 친구’만 나타나면 그 다음 날 온전한 감기의 증상들이 나를 괴롭힌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그래서 다음 날 저녁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술 대신 알코올 없는 호주산 진저비어를 마셨다. 가능한 일찍 집에 들어갔다. 내 몸이 과잉 생산하는 점액 때문에 밤에 잠을 잘 못 잤다. 다음 날에는 집에서 쉬면서 가정 치료법을 받았다. 침도 맞고, 따뜻한 차도 마셨다.

월요일 아침에 기침을 심하게 해서 동네에 있는 작은 병원에 가기로 했다. 불필요하게 항생제를 먹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라 항생제는 처방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증상을 관리하는 정도의 약 처방전을 받았다. 다음 사흘을 병가를 내고 잠을 많이 잤다. 목요일이 되어서야 어느 정도 회복했다고 느껴져 다시 출근을 했는데 아뿔싸. 지나고 나서 보니 그 것은 실수였다.

기침할 때 가래가 나오는 것은 물론 허파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폐의 용량이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왔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에 다시 병원에 갔다. 의사선생님이 엑스레이를 찍고 곧바로 “폐렴이 있으니 큰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도 아니고 면역결핍 환자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일주일 동안 술을 마시지도 않고 건전한 생활을 했던 내가 어떻게 폐렴에 걸릴 수 있을까?’ 너무나 억울했다.

그 순간, 나는 진퇴양난이었다. 아내는 한 시간 전에 자기 형제를 만나러 긴 지하철 여정을 시작했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같이 갈까? 아니면 먼저 혼자 옷가지를 챙기고 가서 입원할까? 아니면 지금 전화해서 집으로 오게 하고 돌아오는 그 긴 여정동안 걱정하게끔 할까?’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 하든 혼이 날테다. 몇 분 고민 끝에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와이프가 오후 6시쯤 집에 돌아온 뒤에야 폐렴에 걸렸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역시 혼이 많이 났다. 일찍 전화하지 그랬냐고 말이다. 가족들과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고 변호를 해봤으나 소용없었다.

당장 후다닥 가방을 싸서 병원에 갔다. 아주 큰 병원은 아닌데다 토요일 저녁이라 병원 내 1층은 좀 어둡고 쓸쓸한 편이였다. 접수데스크에는 남자 한 명만 있었다. 접수를 하고 우리를 4층으로 안내해줬다. 올라가보니 마치 나를 기다린 것 같았다. 간호사는 동네 병원 의사선생님에게서 나의 정보가 몇 시간 전에 들어왔는데 왜 이제야 입원하러 온 것이냐고 물었다.

결국 병원에 누워서 정맥 주사로 항생제와 영양제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키는 194㎝이고, 병원 침대는 작은 편이고, 형광등은 항상 켜있어야 하고, 병실에 있는 냉장고는 시끄러웠기 때문에 첫날밤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갈 때 마다 키가 큰 탓에 링거 바늘에서부터 피가 역류하고 말았다. 둘째 밤은 좀 나아졌지만 역시 집 침대가 최고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사흘 후에 집에 갈 허가를 받았지만 일주일간 출근을 못했다. 며칠 뒤에 다시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피를 뽑고, 약을 받아야만 했다. 차츰차츰 폐렴을 회복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나름대로 건강한 마흔 여섯의 남자가 폐렴에 걸렸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요즘 무소부재한 미세먼지나 공기오염이 영향을 미쳤을까? 주위 사람들은 그렇다고 하지만 의사 선생님들은 왠지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다시 출근을 하고 나서 사나흘째 되던 날. 건강상태를 95%로 되찾게 됐다고 생각할 쯤 또 다시 감기에 걸렸다! 아니, 이 세상에 정의라는 건 없나? 하지만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내가 너무 건강에 자신만만했던 것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됐다. 아내도 인간의 병은 ‘외병’과 ‘내병’이 있다고 했다. 외병은 추운 날씨나 나쁜 공기처럼 환경에서 오는 병이지만 내병은 마음의 근심이나 욕심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것이 과연 사실일까? 아직 믿겨지진 않는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법무법인 충정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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