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실험을 하던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향해 ‘미치광이’, ‘로켓맨’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트럼프는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으면서 ‘막말’ 대통령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투전꾼’, ‘정신이상자’, ‘늙다리 미치광이’ 등은 트럼프를 향해 북한에서 나온 말입니다. 북한 정권에서 나온 말은 자주 신랄하고 직설적이었습니다.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말아요.” 25년 전인 1994년 3월 19일 남북 특사 교환 실무접촉에서 북한 측 수석대표로 나온 박영수 단장의 발언입니다. 국가 간 외교 테이블에서 나올 수 없는 발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막말을 잘합니다. 한때 제1야당 대표를 했던 홍준표 전 대표는 막말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겁니다. 그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를 향해 “경남에는 빨갱이가 많다”고 해 물의를 빚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정치인의 말에 품격이 사라졌습니다. 종북 좌파나 보수꼴통과 같은 이념적 프레임에 갇힌 말들이 공론의 장에서 오갑니다. 제1야당 원내대표가 대통령을 겨냥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 하자 여당은 ‘나베 경원’, ‘국적 불명의 괴물’ 등의 말로 거칠게 되받았습니다.
정치인들의 거친 말은 정치를 꽁꽁 얼어붙게 합니다. 정쟁으로 파행을 겪다가 두 달 만에 어렵게 열린 국회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든 것도 따지고 보면 정책의 차이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함부로 내뱉는 막말이 도화선이 되고 있습니다.
갈등을 봉합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에 불에 기름 붓는 발언이 또다시 나왔습니다. 15일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는 “해방 뒤 반민특위 활동으로 인해 국민이 분열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민주평화당에서는 나 의원을 향해 ‘토착 왜구’라는 표현까지 하며 날을 세웠습니다.
정치인의 막말이 때로는 의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집단 간 갈등을 증폭시켜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고자 하는 고도의 계산된 노림수일 수 있다는 겁니다. 최근 자유한국당의 강경 노선이 이어지자 당 지지율이 30%를 넘어섰습니다. 아베 신조 총리 등 일본 정치인들이 국내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고자 할 때 독도나 역사 문제와 관련한 막말을 쏟아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막말 정치는 정치인들의 ‘자유’일지 몰라도 그로 인한 피로감과 창피함은 국민의 몫입니다.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동시에 반민특위 해체 70주년입니다. 역사의식으로 성찰하고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지는 못할망정 볼썽사나운 정치인들의 막말 잔치를 보는 국민은 답답할 뿐입니다. 언제쯤 우리는 정치인의 연설에서 희망과 비전을 느끼며 미소 지을 수 있을까요.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알려진 윈스턴 처칠, 존 F 케네디, 에이브러햄 링컨, 버락 오바마 등의 품격 있는 명연설을 우리 정치권에서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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