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점 드러낸 정신질환자 매뉴얼
전문의 진단서 없으면 수용 불가… 경찰 “큰 위협 판단 어렵다” 주저
가족 백방 노력에도 입원 못시켜… 전문가 “경찰 개입 권한 더 줘야”
5명의 희생자를 낸 경남 진주 방화·살인 사건 피의자 안인득(42·구속)의 가족이 사건 발생 약 2주 전부터 안인득을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시키려 했지만 제도의 벽에 막혀 모두 무산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인득이 2011년 1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진주의 한 정신병원에서 68차례에 걸쳐 조현병 치료를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안인득은 2010년 행인에게 시비를 걸고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넘겨진 재판에서 ‘편집형 정신분열증(조현병)’ 진단을 받은 이후 5년 6개월간 정신질환 진료를 받은 것이다. 경찰은 안인득이 병원 진료를 중단한 이유에 대해 조사 중이다.
정신질환자를 정신의료기관에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는 제도로는 보호입원, 행정입원, 응급입원이 있다. 하지만 안인득은 세 가지를 모두 비켜 갔다. 일각에서는 정신질환자의 입원에 수사기관이 강제로 개입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인득은 지난달 10일 도로에서 행인을 흉기로 위협하고 폭행한 혐의로 진주경찰서에 피의자로 입건됐다. 안인득의 조현병 증세가 심각해졌다고 판단한 가족은 안인득을 강제 입원시키기로 했다. 정신건강복지법상 보호의무자 2명의 동의가 있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이 입원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하면 환자 본인의 동의 없이도 ‘보호입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안인득의 형이 찾은 정신의료기관에서는 안인득을 받아주지 않았다.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전문의 2명의 진단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문의 진단을 받으려면 환자가 병원을 직접 방문해 대면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안인득은 ‘병원에 가자’는 형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19일 본보와 만난 안인득의 남동생은 “형은 ‘엄마가 밥에 독을 탔다. 가족들이 날 해코지하고 감시한다’며 의심했다. 가족들을 향해 흉기를 들기도 했다. 병원에 가서 진단받자고 하는 설득이 통하지 않았다”고 했다.
형은 이달 4일 진주서를 방문해 안인득을 강제 입원시킬 방법을 문의했다.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가할 위험이 큰 사람에 대해 의사 1명과 경찰관 1명의 동의가 있으면 정신의료기관에 3일간 입원시킬 수 있는 ‘응급입원’ 제도가 있다. 그러나 경찰에서도 “응급입원을 시킬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안인득이 ‘자신이나 타인을 해칠 위협이 큰 상태’라고 판단하기 어려웠다는 게 이유다. 경찰에 따르면 안인득은 지난해 9월 이후 세 차례 경찰에 입건돼 조사를 받았지만 이때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라며 모든 혐의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진주서 관계자는 “9번의 미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10번째에 살인을 저지를지 경찰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며 “인권침해 논란으로 옷을 벗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인득의 가족은 마지막으로 ‘행정입원’ 권한을 가진 지방자치단체의 힘을 빌려 보려 했지만 이때도 ‘전문의 진단’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나 정신건강전문요원은 타인을 해치거나 자해 위험이 높은 정신질환자가 발견됐을 때 자치단체에 환자에 대한 진단과 보호를 신청할 수 있다. 신청이 접수되면 지자체는 입원이 필요하다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을 근거로 지정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을 의뢰한다. 행정입원을 위해서도 전문의 2명의 진단이 필요한데 안인득이 병원에 가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진단을 받을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수사기관이 강제입원을 위한 이송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준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는 “수사기관, 특히 경찰이 강제입원을 위한 이송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환자가 전문의 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