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은 되고, 수술실은 안 되는 CCTV

  • 주간동아
  • 입력 2019년 5월 5일 07시 49분


“대리수술, 의료사고 방지 위해 필요” vs “환자 및 의료진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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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 논의가 불거지고 있다. 2016년 9월 분당차여성병원에서 29주 만에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를 급히 옮기다 의료진이 떨어뜨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기는 7시간여 만에 사망했는데, 의료진이 사고 사실을 숨겼다는 의혹이 뒤늦게 제기됐다. 그동안 논란이 돼온 대리수술과 수술실 내 인권침해에 더해 의료사고 은닉 의혹까지 제기되자 수술실 CCTV 설치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의료계는 수술실 CCTV 설치는 안 된다고 맞서고 있다. 의사 진료의 자율성과 의사나 환자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환자단체에서는 병원 측이 CCTV를 적극 도입하려 하는데 왜 수술실은 안 되느냐며 반박한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자는 주장은 2010년대 중반부터 줄곧 나왔다. 수술실에서 일어난 일은 의료인밖에 알 수 없어 수술 중 문제가 발생해도 의료인의 양심고백이 없으면 묻힌다는 이유에서다. 환자단체는 더는 의료인의 양심만 믿고 있을 수 없다며 CCTV를 설치하자고 주장하는 것.

수술실 일은 의료진밖에 모른다

실제로 수술실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일이 종종 보도되고 있다. 2013년 10월 한 대학병원 흉부외과 의사가 어린 환자를 두고 수술실을 비웠다. 마취과 의사와 말다툼을 하다 화가 나 나가버린 것이다. 어린 환자는 마취된 상태로 방치되다 결국 수술을 받지 못했다.

이듬해 12월에는 유명 성형외과의 간호조무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사진이 문제가 됐다. 수술실에서 의료진이 촛불이 켜진 생일 케이크를 들고 다니고, 바닥에 앉아 음식을 먹는 사진이었다. 이때 수술대에 환자가 누워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2016년 7월에는 대형병원 산부인과에서 원래 수술하기로 한 유명 교수가 자기 대신 후배 의사를 수술실에 들여보냈다. 이 같은 대리수술을 ‘유령수술’이라고도 부르는데, 수술받은 환자는 일종의 사기를 당한 셈이지만 현재 마땅한 처벌 규정이 없다.

아예 의료인 자격이 없는 사람이 수술을 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5월 부산 한 정형외과에서 수술받던 환자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 의사 대신 의료기기업체 영업사원이 대리수술을 하다 사고가 난 것. ‘의료법’ 제27조에 따르면 의료인이 아닌 사람은 수술 등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적발되면 5년 이하 징역 혹은 5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고, 자격정지 혹은 면허취소 처분을 받는다.

대부분은 자격정지 정도의 처벌을 받는다.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8년 8월까지 68개월간 대리수술 적발 건수는 총 112건. 이 중 자격정지 처분이 105건(93.8%), 면허취소는 7건뿐이었다. 정지 기간이 끝나면 다시 의사로 활동할 수 있다. 면허취소가 되더라도 3년이 지나면 재교부받는 것이 가능하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관계자는 “수술실에서 불법행위가 자행되거나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의료계는 자정 노력을 하겠다며 CCTV 설치를 극구 반대해왔다. 하지만 매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2015년 1월 최동익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관련 내용을 포함한 의료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상임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못 하고 폐기됐다. 의료계의 반대는 물론, 의원들도 법안 통과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지난해 10월에는 국립암센터 수술실에 의료인이 아닌 의료회사 직원이 드나든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는 아직 관련 법안이 발의된 바 없다.

경기도는 지난해 10월부터 경기도의료원과 산하 안성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 시범운영했다. 도민의 반응도 좋았다. 같은 달 12일 도민 1000여 명에게 수술실 CCTV 설치에 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1%가 찬성표를 던졌다. 5월 1일부터는 경기도의료원 산하의 수원, 의정부, 파주, 이천, 포천 병원 수술실에 CCTV가 설치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줄곧 반대해왔다. 지난해 9월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수술실 CCTV 설치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의협은 ‘수술실 CCTV 설치로 인해 의료인의 진료가 위축됨으로써 환자를 위한 적극적인 의료행위가 방해될 뿐 아니라, 수술 등 의료행위를 받은 환자 개인과 의료 관계자의 사생활과 그 비밀이 현저히 침해될 수 있다. 결국 수술 의료진과 환자의 신뢰 관계가 무너지는 최악의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료실, 응급실은 돼도 수술실은 안 돼?
신생아 낙상 사망을 은폐한 의혹을 받는 경기 성남시 분당차병원. [뉴스1]
신생아 낙상 사망을 은폐한 의혹을 받는 경기 성남시 분당차병원. [뉴스1]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이에 대해 “계속되는 사건과 논란으로 신뢰를 먼저 무너뜨린 것은 의료계”라고 반박했다. 안 대표는 “수술실에 들어가는 의료진은 위생 문제 때문에 눈만 내놓고 수술한다. 수술대의 환자도 보통 환부만 노출된 상태에서 수술을 받는다. 환자단체가 원하는 것은 환자가 촬영을 허락하는 경우에 한해 수술실 CCTV를 켜는 방식이다. 사생활 공개와는 큰 관련이 없다. 애초에 유령수술 등을 막기 위한 수단일 뿐, 의료행위 위축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현재 많은 병원이 응급실, 진료실에 CCTV를 설치했다. 안 대표는 “의료진의 안전을 위해 응급실과 진료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의료진의 안전을 위해 CCTV 설치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줄곧 논란이 일어나는 수술실에 CCTV 설치는 불가하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조현병을 앓고 있던 환자 박모 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응급실의 폭행 사건도 심각한 수준이다. 보건복지부의 ‘의료기관 기물파손과 의료인 폭행·협박 현황’ 통계에 따르면 2017년 관련 혐의로 신고 및 고소된 사건은 모두 893건. 하루 2~3건씩 의료시설에서 난동을 피우는 사람이 나타나는 셈이다.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은 지난해 11월부터 의료기관 내 폭행 및 난동 혐의에 대해 형량 하한제를 실시해 처벌을 강화했다. 의협이 제작한 ‘의료기관 내 폭력 사건 대응 매뉴얼’을 응급실 상황에 맞게 수정, 보완하고 응급실 내 CCTV 설치비용도 지원하고 있다.

박종혁 의협 대변인은 “응급실, 진료실에 CCTV를 설치하는 일과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수술실 CCTV는 의료진의 적극적인 진료를 막을 수 있다. 한 증상에 대해 다양한 대처가 가능하다. 지금은 의사 본인이 환자에게 최적이라고 판단한 시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감시의 시선이 생기면 고난도의 수술보다 교과서적인 처방만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의료 행위에도 상식선이라는 것이 있어 의료사고가 생기더라도 상식선의 처방이라면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있다고 하지만, 상식선이라는 애매한 기준을 믿고 소신 있게 수술할 의사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택시, 어린이집에는 설치해도 병원은 안 돼?
류영철 경기도 보건복지국장은 5월 1일 오전 경기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부터 종전에 운영 중이던 안성병원을 포함해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 모두에서 수술실 CCTV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뉴스1]
류영철 경기도 보건복지국장은 5월 1일 오전 경기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부터 종전에 운영 중이던 안성병원을 포함해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 모두에서 수술실 CCTV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뉴스1]

CCTV 설치가 의무화된 일터도 있다. 어린이집은 2015년 보육교사들의 반대에도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통과됐다. 보육교사들이 같은 해 헌법소원도 냈지만 헌법재판소는 “CCTV 설치는 그 자체만으로 사고 예방 및 아동 학대 방지 효과가 있다. 보육교사 등의 기본권에 제약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사익이 공익에 비해 크다고 보기 어렵다”며 헌법소원을 기각했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하물며 택시에도 블랙박스가 있다. 택시운전사 가운데 블랙박스 설치를 꺼리는 사람은 드물다. 사고가 나면 책임 소재를 확실히 가릴 수 있고, 운전사를 공격하는 취객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수술실의 CCTV도 의료진이 누명 쓰는 일을 막아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위스콘신주도 최근 수술실 CCTV 설치와 관련해 논쟁이 일었다. 위스콘신주의회는 지난해 12월 관련 법안을 발의해 올해 1월 상임위원회에 공식 회부됐다. 의료계는 “위스콘신주에서만 같은 논쟁이 일고 있고, 위스콘신주도 의료계의 반발로 법안 통과가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환자단체는 위스콘신주에서 관련 법안이 상임위원회까지 도달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미국의 다른 주에서도 병원이 수술 장면을 의무적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법안이 계속 발의되고 있다. 이는 2015년 버지니아주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이다. 대장내시경 수술을 앞둔 남성 환자가 사전에 몰래 휴대전화 녹화 버튼을 누른 뒤 수술실에 들어갔다. 휴대전화에는 수술실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조롱하고 오진을 내리는 내용이 그대로 담겼다. 환자는 이를 증거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병원이 50만 달러(약 5억7550만 원)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있는 CCTV부터 공개해야
지난해 10월 1일 오후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관제실에서 병원 관계자들이 수술실 CCTV를 점검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0월 1일 오후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관제실에서 병원 관계자들이 수술실 CCTV를 점검하고 있다. [뉴스1]

캐나다 토론토 성미카엘병원의 ‘수술실 블랙박스’도 대안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의료진 간 대화를 포함해 수술기구의 움직임, 환자의 혈압·체온·심박수 등을 기록하는 장치다. 수술 후 환자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파악할 수 있고, CCTV보다 사생활 침해 논란이 적다. 환자단체 관계자는 “당초 수술실 CCTV 설치 논의가 시작된 것이 유령수술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를 확인할 수단만 있으면 굳이 CCTV가 아니어도 각 단체가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 전문 법조인들은 양측과 의견이 같으면서도 달랐다. 의료계와 환자단체의 의견 모두 일리가 있다는 것. 법조계가 수술실 CCTV와 관련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환자의 사생활이다. 수술 당시에는 동의해도 어떤 수술을 하는지에 따라 추후 해당 영상을 지우고 싶어질 수 있기 때문. 이 같은 사안을 모두 고려해 법안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무조건 수술실 CCTV 설치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의료 전문 법률사무소 히포크라의 박호균 대표 변호사는 “일단 병원에 설치된 CCTV만 모두 공개해도 환자단체가 원하는 바는 대부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이미 응급실과 진료실은 물론, 병원 복도나 통로까지 CCTV가 대부분 설치돼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연구 목적으로 환자로부터 동의를 얻고 수술 장면을 촬영하기도 한다. 따라서 환자가 원할 때 병원 내 CCTV 자료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면 수술실까지 CCTV를 설치할 필요는 없다. 나머지 장소의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대리수술 문제를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기에 앞서 병원 내 CCTV를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먼저 경기도가 공립 병원에 시범 도입한 수술실 내 CCTV 설치의 장단점을 확인한 뒤 차근차근 논의를 진행해도 늦지 않다”고 밝혔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87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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