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의학 전문 국제 저널인 ‘랜싯 온콜로지’에 한국 교수의 논문이 실렸다. 대장암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개복 수술했을 때와 복강경을 이용해 수술했을 때의 장단점을 비교한 논문. 두 수술의 치료효과가 차이 없다는 점과 복강경 수술 쪽이 통증이 적고 회복이 빠르다는 점을 조목조목 입증한 이 논문은 의학계의 화제가 됐다. 환자의 실제 임상 결과를 바탕으로 한 연구로는 세계에서 처음이었다. 이 논문을 계기로 한국의 대장암 복강경 치료법은 국제 의학계에서 ‘가이드라인’이 됐다. 외국 의학교과서들도 한국 기술을 ‘코리안 트라이얼’이라며 소개했다. 당시 이 연구를 이끌었던 의사가 정승용 현 서울대병원 부원장(대장항문외과 교수·55)이다.
정 교수는 한때 1년에 400여 명의 환자를 수술했다. 하지만 2016년 병원 기획조정실장을 맡은 후로 초진 환자를 줄여야 했다. 병원 업무와 진료를 모두 하려니 몸이 남아나지 않았다. 최근 부원장을 맡으면서 당장 체력부터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헬스클럽에 갈 시간조차 없다는데, 정 교수는 어떻게 몸 관리를 하고 있을까.
● “운동은 뭐든지 즐긴다”
정 교수는 테니스를 꽤 즐긴다. 요즘도 2주에 한 번씩은 병원 테니스장에서 동료 교수들과 게임을 한다. 실력이 궁금해졌다. 정 교수는 “아주 잘 하지는 않지만, 함께 즐기는 데는 지장 없는 수준”이라며 웃었다.
테니스를 시작한 게 40여 년 전의 일이다. 정 교수가 고교 1학년 때였다. 전국적으로 과외 금지령이 떨어졌다. 덕분에 학생들에게 시간적 여유가 좀 생겼다. 그때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테니스였다. 그 이후로 한동안 테니스에도 푹 빠져 살았다. 30대 후반에 군의관으로 복무할 때는 매일 3시간씩 테니스를 했다.
정 교수는 테니스의 운동 효과에 대해 “다이어트는 물론 근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군 생활을 하면서 테니스 외에 다른 운동은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체중은 입대 전 72㎏에서 제대할 무렵 63㎏으로 빠졌다.
테니스만큼 자주 즐기지는 못하지만 산행도 정 교수의 운동 취미 중 하나다. 수도권의 웬만한 산은 모두 올랐다. 어림셈을 해 보니 30여 개는 된단다. 그 중에서도 북한산을 가장 많이 올랐고, 가장 좋아한다. 보통은 정릉에서 올라가 대성문, 대남문을 거쳐 구파발로 넘어가는 3시간짜리 코스를 이용한다. 가끔은 코스를 중간에 바꿔 8시간 정도 산에서 유유자적하다 내려오기도 한다.
정 교수는 유치원에 다닐 때 처음 산에 올랐다. 당시 은행원이었던 아버지가 강원도 강릉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설악산을 수시로 오르내렸다. 아버지가 서울로 근무지를 옮긴 후로는 북한산을 동네 뒷산처럼 다녔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도 종종 아버지와의 산행을 즐겼다. 당시에 아버지가 선물로 준 수제 등산화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추억이 담긴 신발이다.
산을 좋아하니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매달 1회 이상은 꼭 산에 갔었다. 하지만 병원 기획조정실장을 맡은 후로는 주말을 투자해 산에 가는 게 힘들어졌다. 가장 최근에 산에 간 것이 1월이다. “제주도의 설산을 다녀왔습니다. 한때는 눈만 오면 새벽에 무조건 산에 갔었는데…. 설산은 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 같습니다.”
● “내 몸에 맞는 운동 종목 찾아야”
정 교수는 테니스와 등산 말고도 좋아하는 운동이 많다고 했다. 동료들과 종종 골프도 하며 한때는 10㎞ 마라톤에 도전한 적도 있다. 이토록 좋아하는 운동을 요즘은 맘껏 즐기지 못한다며 아쉬워했다. 김 교수는 “일단 시간적 여유가 없다.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젊었을 때는 쌩쌩하던 몸이 나이가 들면서 ‘노화’의 과정을 밟는다. 몸 상태가 과거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정 교수도 마찬가지여서 무릎 상태가 나빠졌다. 그러니 등산을 무턱대고 즐길 수만은 없는 일. 언젠가부터 스틱을 쓰지 않으면 산에 오르는 게 힘들어졌다. 하산할 때 무릎이 더 아팠다.
정형외과 동료 의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동료 의사는 “그냥 두면 늙어서 더 고생하니 운동 종목을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사실 정 교수도 건강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중년 이후에 생기는 고혈압, 당뇨 같은 만성 질환을 정 교수라고 피할 수는 없었던 것. 게다가 저녁 회식이 많이 늘었다. 뱃살은 늘어났고 몸은 더 피곤해졌다. 체중도 불어났다. 건강검진을 받아보니 당화혈색소 수치도 정상 범위를 넘어서 있었다. 건강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정 교수는 생각했다.
정 교수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쉽게 할 수 있으며,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법을 찾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 거실 한쪽에 있는 고정식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몇 년 전 아내가 사둔 것인데 별로 사용하지 않고 있었던 운동 기구였다. 바로 이거다!
정 교수는 집에서 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따로 헬스 트레이너를 둘 필요도 없고, 굳이 시간을 내서 헬스클럽을 찾아가야 할 필요도 없다. 자신의 몸 상태에 맞게 운동 종목을 구성할 수도 있다. 이른바 ‘홈 트레이닝’을 시작한 것. 8개월 전의 일이다.
● 홈 트레이닝으로 8개월 만에 7㎏ 감량
정 교수는 퇴근 후에는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출근하기 전에 운동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자전거 안장에 앉았다. 처음에는 20분 동안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약 10㎞를 달렸다. 나중에는 20㎞까지 거리를 늘렸다. 최고 시속도 20~50㎞를 오르락내리락한다.
얼마 후 팔굽혀펴기와 스쾃을 추가했다. 팔굽혀펴기는 1초당 1,2회, 스쾃은 1초당 1회 정도의 속도로 진행했다. 정 교수는 시중에서 파는 운동 기구를 이용한다. 이 경우 정확한 자세를 만드는 것이 좀 더 쉬워진다.
팔굽혀펴기는 처음에 70회 정도 했다. 이후 100회로 늘렸고, 지금은 120회를 한다. 스쾃도 꼬박 100회를 채운다. 얼마 전부터는 ‘플랭크’ 자세도 추가했다. 플랭크는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전신을 지탱하는 운동. 몸통에 근육을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이런 종목 구성은 의학적으로 타당하다. 실제 정 교수는 정형외과 동료 의사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구성했다고 한다. 유산소 운동으로 걷기나 뛰기 대신 자전거를 택한 것은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서였고, 나머지 세 종목은 척추 건강은 물론 근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
정 교수는 최소한 일주일에 3회, 많으면 4,5회 홈 트레이닝을 한다. 8개월 동안의 운동 효과는 어땠을까. 우선 당화혈색소 수치가 8%에서 6%로 떨어졌다. 당화혈색소는 당뇨병을 판단하는 지표 중 하나로 6.5%를 넘어가면 당뇨병에 걸린 것으로 판단한다. 뿐만 아니라 체중도 7㎏이 줄었다. 몸이 가뿐해진 것은 그야말로 덤이다.
“운동하지 않은 날에는 몸이 찌뿌드드합니다. 그런 날에는 집무실에서라도 팔굽혀펴기를 하지요. 홈 트레이닝에 중독된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즐겼던 운동을 모두 중단하지는 않았다. 정 교수는 발상 자체를 바꿀 것을 주문했다. 심적 위안과 재미를 얻기 위해 즐기는 운동과, 건강관리를 위해 해야 하는 운동을 구분하는 것이다.
“무턱대고 다 중단하면 오히려 우울해지지 않을까요? 조심하면서 최대한 즐기고, 건강관리는 따로 하고. 이게 제가 찾은 건강법입니다.”
▼ ‘홈 트레이닝’ 제대로 하는 법 ▼
헬스클럽에서 트레이너의 지도를 받으면 운동 효과가 더 좋을 수는 있다. 하지만 중년 이후의 직장인들이 매일 혹은 매주 3, 4회 이상 헬스클럽을 찾아 운동하기란 쉽지 않다. 정승용 서울대병원 부원장이 집에서 운동하는 이유다. 정 교수에게 ‘홈 트레이닝’을 제대로 하는 법을 들어봤다.
● 아침 시간대를 활용하라
운동은 규칙적으로 해야 건강에 도움이 된다. 기분이 내켰을 때 한두 시간 열심히 달리거나 근력 운동을 하더라도 건강 개선 효과는 별로 없다. 따라서 집에서 운동하려면 언제 시간을 낼 수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정 교수는 “대체로 출근하기 전의 아침 시간대가 운동하기에 좋다”고 말했다. 퇴근한 후에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어도 회식이나 저녁 약속 등이 겹치다 보면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것. 아침 시간대에 운동하기로 마음먹으면 일주일에 3회 정도는 운동할 수 있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 나만의 프로그램을 짜라
헬스클럽에서는 전문 트레이너가 운동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결국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정 교수는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이 적절히 섞이도록 자신만의 프로그램을 짜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운동 시간은 처음에 30분 내외로 잡았다가 1시간 정도까지 늘리는 게 좋다. 운동 종목도 단계적으로 늘리도록 한다. 정 교수의 경우 처음에는 자전거 타기로 시작했다가 팔굽혀펴기와 스쾃을 추가했으며 최근에는 플랭크에도 도전했다.
● 무리한 운동은 삼가라
혼자 운동하다 보면 자칫 근력을 키우려고 과도하게 동작을 하거나 힘을 줄 때가 있다. 정 교수는 “이른바 ‘몸짱’이 되기 위해 홈 트레이닝을 하기보다는 질병을 막기 위해 하는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무리하게 근력 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정확한 자세가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를테면 팔굽혀펴기를 할 때에는 어깨넓이로 팔을 벌리고, 팔이 직각을 이루는 정도까지만 굽혀도 된다. 어깨를 더 벌릴 경우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스쾃을 할 때도 등과 가슴을 펴고, 허벅지에 힘을 준 상태에서 무릎을 굽히는 게 좋다.
● 지루한 운동은 실패한다
아무리 몸에 좋아도 지루하면 곧 운동에 싫증이 난다. 따라서 지루하지 않도록 여러 장치를 준비하는 게 좋다. 정 교수는 일단 거실에서 TV를 틀고 운동할 것을 권했다. 음악을 트는 것도 방법.
동작이 어려워지면 운동하기가 싫어질 수 있다. 정 교수는 시중에 파는 도구들을 이용할 것을 권했다. 이 경우 운동하는 게 훨씬 쉬워진다는 것. 싸게는 1만 원 이내에서 비싸도 10만 원대에서 살 수 있는 제품이 많다. 가령 스쾃을 도와주는 기구를 쓰면 바른 자세로 쉽게 운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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