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어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낸 사실을 발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친서를 읽는 사진을 공개하면서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깊고 중요하게) 생각해 볼 것”이라는 김정은의 발언도 보도했다. 김정은이 미, 중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트럼프 대통령도 미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보낸 친서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는 편지라고 소개했다.
김정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내내 극진한 환대를 하면서 북-중 공조를 과시했다. 미국을 향해 중국이 북한의 든든한 뒷배임을 알리며 압박 수위를 높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친서를 주고받으며 ‘톱다운’ 비핵화 협상의 불씨를 이어갔다. 북-중-미 정상 간에 서로 당기고 견제하는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이 북핵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반면 한국 외교의 무력감은 커지고 있다. 남북 한중 한일 한미 등 어느 관계에서도 청신호가 켜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때 중국 러시아 캐나다 인도네시아 등 4개국과 정상회담을 한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시 주석의 방한을 추진해 왔지만 일본에서 만나는 것으로 조정된 것이다. 의장국인 일본과의 정상회담은 공식 발표에서 빠졌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 개최 여부에 대해 “시간이 제한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싶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한국은 갈수록 비핵화 협상 구도에서 소외되어 가는 형국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달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이전에 남북 정상회담을 갖자고 북측에 제안해 왔지만 북측은 묵묵부답이다. 북-미 간 비핵화 이견을 중재하고 창의적 중재안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은 공허해진 상태다.
한일 관계는 최악의 상태에서 계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데 북한은 일본과의 정상회담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남북 관계에만 매달리며 외교의 지평을 넓히지 못할 경우 한국 외교의 위상은 더 약화될 것이다. 이 상황을 방치할수록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도 어려워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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