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정말 감동받은 듯했다. 20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숙소인 금수산 영빈관에 이르는 27km 도로를 이동하는 내내 평양 시민 25만 명이 양옆 인도를 가득 채우고 ‘열렬히’ 환영했다.
평양 인구가 약 289만 명이니 시민 10명 중 1명(약 9%)이 나온 셈이다. 시 주석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북-중이 한 가족이라는 짙은 분위기를 어디서든 느꼈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북-중 우의는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미담이 됐다”고 전했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이들이 자발적으로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중 밀착이 필요한 김 위원장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원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불과 4일 전인 16일 홍콩에선 약 200만 명(주최 측 추산)의 반중(反中) 시위대가 도심 빅토리아 공원에서 홍콩 정부 청사에 이르는 4km 차도를 가득 메웠다. 홍콩 인구 약 748만 명 가운데 27%가량이 시위에 참여한 셈이다. 이들은 친중(親中) 행보를 펴 온 홍콩 행정수반 캐리 람 장관의 퇴진을 강하게 요구했다. 동원된 평양의 시 주석 환영 인파와 달리 홍콩 시위 현장은 자발적으로 나온 이들로 가득했다. 홍콩에서 만났던 시위대는 시 주석이 이끄는 중국 정치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불신을 드러냈다. 20대 젊은이들이 주축이지만 남녀노소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중국화가 가속화되는 홍콩의 미래에 대한 공포의 그림자가 이들의 표정 위에 짙게 드리웠다.
200만 명 시위를 하루 앞둔 15일. 자정이 다 돼가는 한밤중임에도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홍콩 입법원(국회)으로 연결되는 육교에서 시위를 벌였다. 27세의 레이모 씨. 30도를 훌쩍 넘는 무더위에 티셔츠는 흠뻑 젖었고, 몸은 지쳐 보였다. ‘자정이 가까웠는데 힘들지 않냐’고 묻자 자신들의 행보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했다.
“홍콩은 국가가 아니라 중국에 의존하는 특별행정구예요. 삼권분립이 없고 사법제도가 불공정한 중국에 홍콩인을 송환한다면 우리 홍콩이 중국과 협상해 이들의 인권을 보장할 어떤 방법도 없습니다. 그 분노 때문에 반드시 거리에 나와야 하는 겁니다.”
젊은이들뿐 아니라 홍콩 기업계의 불안도 상당하다. 한 소식통은 “공산당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중국 기업들과 비슷한 처지가 될까 봐 두려워한다”고 전했다.
1997년 홍콩 반환 때 중국은 2047년까지 일국양제 보장을 약속했다. 하지만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홍콩인들의 강한 불신은 지금 확산되고 있다. 이는 홍콩 경제를 위축시키고 2047년 이전 홍콩인의 엑소더스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동아시아 금융의 중심인 홍콩이 더 이상 예전의 홍콩이 아니라면 중국은 세계인에게 어필할 커다란 매력 하나를 잃어버리는 셈이다.
시 주석은 이번 방북에서 “북-중 관계는 사회주의가 본질적 속성”이라고 북한에 공을 들였다. 정작 중국과 ‘진짜 한 가족’인 홍콩인들은 중국식 사회주의가 자신들의 삶을 통제할까 봐 두려워한다. 시 주석이 귀 기울여야 할 대상은 동원된 25만 명보다는 공포감 속에 거리에 나선 200만 명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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