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대, 입법회 펜스-유리문 부수고 기습 점거…경찰과 극렬 대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일 23시 16분


홍콩인의 중국 송환을 허용하는 ‘범죄인 인도법’의 완전 철회와 홍콩 행정수반 캐리 람 행정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홍콩의 반중(反中) 시위대 일부가 홍콩 반환 22주년인 1일 홍콩 입법회(국회) 건물 펜스와 유리문을 부수고 들어가 입법회를 점거했다.

이들은 역대 홍콩 행정장관들의 초상화 등 입법회 내부 시설을 훼손하면서 입법회 회의실 내부까지 진입했다. 일부이긴 하나 대체로 평화로운 집회를 이어왔던 시위대가 입법회를 습격해 일부 시설을 파괴하면서 과격화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위대의 입법회 점거가 2014년 75일간 홍콩 도심인 센트럴을 점거한 민주화 시위 ‘우산 혁명’처럼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이날 대부분 검정 옷을 입고 노란 헬멧과 고글, 마스크를 쓴 수백 명의 시위대는 금속 카트와 쇠파이프 등으로 유리문을 부수고 입법회 안으로 들어간 뒤 입법회 내부의 경찰과 대치했다. 입법회 바깥에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입법회는 사상 최초로 내부 인원 전체 대피령인 적색경보를 발령했다.

SCMP는 홍콩 경찰이 “일부 시위대가 수산화나트륨으로 경찰을 공격했고 오전에는 하수구 세척제로 추정되는 액체를 경찰에 뿌려 경찰 13명이 호흡 곤란과 피부 발진을 호소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에도 컨벤션센터로 이어지는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와 가스총과 곤봉, 방패로 무장한 홍콩 경찰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은 최루가스를 쏘며 진압을 시도했다. 시위대와 경찰 간 무력 충돌은 지난달 12일 경찰이 시위대를 강경 진압해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지 19일 만이다.

경찰은 “일부 시위대가 극단적 폭력으로 입법회를 기습하고 공격적인 무기로 유리문을 파괴했다”며 “이를 비판하고 강한 유감을 표시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반면 시위대는 “평화적 집회가 (문제 해결에) 소용없는 것으로 나타난 뒤 분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인 홍콩 민주당 창립자 마틴 리는 “다수 시민은 평화 집회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이들과 별도로 약 55만 명의 시위대는 이날 오후 빅토리아공원에서 홍콩 정부청사까지 4km를 평화 행진했다.

이날 오전 입법회 인근 게양대에는 홍콩기 옆자리에 있던 중국 국기 오성홍기가 사라진 대신 검은색 홍콩기가 휘날렸다. 시위대가 오성홍기를 내리고 검은 홍콩기를 게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래 홍콩기는 빨간색 바탕에 홍콩을 상징하는 ‘홍콩난(바우히니아)’의 하얀색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일부 시위대는 이날 홍콩 완차이 컨벤션센터 앞에서 검은 홍콩기를 흔들며 “지금 홍콩 상황을 대변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홍콩 반환 22주년 기념행사는 22년 만에 최초로 컨벤션센터 실내에서 열렸다. 그간 컨벤션센터 앞 부두에서 화려한 행사가 열린 것과 대조적이다. 2년 전인 2017년 20주년 반환 행사 때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까지 참석했다. 홍콩 정부는 ‘폭우’를 이유로 들었지만 홍콩 내 강한 반중 정서와 이날 대규모 시위를 의식했다는 분석이 많다. 홍콩 경찰 전체 3만 명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약 5000명의 시위 진압 경찰이 컨벤션센터 주변에 배치됐다. 람 장관은 지난달 18일 인도법 강행에 대해 사과한 뒤 13일 만에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등장했다. 그는 이날 약 6분간의 연설에서 “정치적 입장을 넘어 각계각층 시민들과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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