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무역전쟁 ‘전운’…금융 보복·비자혜택 축소 나설 수도

  • 뉴시스
  • 입력 2019년 7월 2일 12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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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치닫던 외교대립, 일촉즉발 '무역전쟁' 초입까지
韓산업 '급소' 반도체·디스플레에 소재 수출규제 이어
금융제재, 비자혜택 축소, 취업 억제, R&D협력 축소 등
국제사회 비판 피해 '은밀히 제재' 행정력 동원 할수도
"무너진 양국 간 신뢰관계 재강화 외교노력 필요 시점"


일본 정부가 1일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우리나라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겨냥한 사실상의 경제 제재를 발동하면서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G20 정상회의에서 미중이 무역협상 재개에 합의하고,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일부 완화하기로 하면서 대외 불확실성이 어느정도 해소되나하는 기대감은 잠시였다.

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메모리 가격하락과 수요부족으로 인한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우리나라 수출상황은 지난 6월 7개월째 연속 하락했고, 감소폭도 3년5개월만의 최대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한일 간 극한으로 치닫던 외교 대립이 결국 일촉즉발의 ‘무역전쟁’ 초입 상황까지 놓이게 됐다. 일본이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목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산업의 ‘급소’인 소재 수출에 대한 규제 강화에 나서자, 우리 정부는 바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으로 맞대응했다. 지난 1961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58년 만에 첫 무역전쟁의 전운이 드리우고 있다는 평가다.

여기에 일본 정부는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엄격화 등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과 관련한 다양한 대항 조치를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번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가 일본 자국 산업의 피해를 초래하는 ‘자충수’라는 평가 속에 협상용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낙관하기엔 이르다.

일본 전문가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일본이 실제로 한국에 대해 명시적으로 경제제재를 가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비판이나 피해를 보게 될 일본기업의 입장 등을 고려하면 쉬운 결정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일본은 은밀하게 한국과의 각종 경제협력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행정 분야의 애매한 부분에서 한국에게 불리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이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하면서 한국을 효과적으로 은밀하게 제재할 수 있도록 각종 행정력을 총동원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 위원은 “일본의 여당인 자민당에서는 일본기업이 간접적으로 피해를 보더라도 한국에 대해 경제제재를 감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 제기돼 왔다”면서 “수출규제는 WTO 위반이며, 일본이 국제적 비난을 받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직접 수출제한보다 일본으로서는 통관 시간을 지체시키는 등 은밀한 행정적 제재를 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재 수출 규제에 이은 두 번째로 보복조치로 금융제재를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은 2017년 말 기준으로 328조엔(약3519조원)에 달하는 세계최대의 순채권국이며, 글로벌 자금은 일본에서 미국, 그리고 각 신흥국으로 투자되는 자금 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시에는 일본으로 자금이 몰리면서 엔고 경향이 발생하기도 한다.

일본이 이러한 금융파워를 한국경제 및 기업의 제재에 활용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계 은행의 한국에 대한 여신은 586억달러(약 68조원, 2018년9월 BIS 집계 기준)이며, 무시하지 못할 규모이다. 한국기업, 금융기관, 공사 등이 저금리인 일본에서 채권을 발행하는 여건이 악화되는 부정적 영향도 우려된다. 일본계 신용평가기관(R&I 등)이 일본정부의 압력도 고려하면서 한국 관련 채권의 신용평점을 낮추게 될 경우 한국기업 입장에서는 커다란 기회 손실이 될 수 있다.

세 번째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여행비자 혜택을 축소하거나 한국 젊은층 등의 일본기업 취업을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을 여행한 한국인은 지난해 753만9000명으로 3000만명을 돌파한 일본의 전체 관광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에 달하기 때문에 일본정부가 한국인 관광객 유치 성과를 희생하면서까지 비자 면제 조치를 전면적으로 폐지하지는 않겠지만 한국인 관광객의 체재 허가 기간(90일)을 축소할 수는 있다.

한국인은 단기 여행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일본 여행업계에 큰 지장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일본기업은 만성적인 인력부족으로 인해 외국인 근로자의 유치를 희망하고 있고, 일본정부도 금년 4월부터 건설, 간호, 농업 등 중간 스킬을 가진 외국인 인력의 일본 취업을 촉진하는 정책을 시행했으나 한국인의 유치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최근의 세계경기 불안 및 일본경기 둔화로 인해 일본의 인력 부족 문제가 완화될 경우에는 한국 젊은 층의 유치를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

네 번째로 한일 간의 기술개발 및 연구협력을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 정부는 각 부처를 통해 과학기술 예산을 집행 하면서 대학, 공공연구기관, 기업 등의 연구 방향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입장이며, 이를 활용해서 한국 대학이나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여러 분야에서 일본을 앞섰으나 소재 및 기계를 포함한 광범한 과학 및 기술에서 일본과의 협력이나 분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협력이 왜곡될 경우 한국 산업, 경제에 중장기적인 악영향이 발생할 것으로 관측된다. 여러 분야에서 세계최고 수준에 이른 우리 산업이지만 새로운 제품, 기술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필요한데 우리나라에는 아예 기반이 없는 분야도 있기 때문에 폭넓게 연구개발 인프라를 갖춘 일본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필요한 첨단 소재나 기계를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잘 개발하지 못할 경우 우리 산업이 중국산업의 추격에 맞서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또 일본이 외교적 보복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 주도해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11개국이 참여하는 형태로 발족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한국이 참여하려 해도 일본이 각종 표면적 이유를 들면서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정책에서 한국과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일본이 미국정부 등을 대상으로 우리 정부의 입장에 반하는 외교정책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이 위원은 “일본 정부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오는 8월 중 시행령을 개정할 것으로 알려진만큼 앞으로의 전개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면서 “양국 간에서 각종 현안을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면서 무너져가는 양국 간 신뢰관계를 많은 경로에서 재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실장은 “이번 수출 규제는 이전부터 일본 언론을 통해 한국에 대한 제재를 해야 한다는 둥 얘기가 나오며 예고가 돼있었던 상황”이라며 “일본이 이번에 제재 조치를 했다는 것은 제재에 대한 준비를 많이 해왔으며, 향후 제재가 확산될 수 있으며 외교적인 노력으로도 장기간 회복되지 않는다면 추가적 조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엄 실장은면서 “민간 경제계는 정부 차원의 경제 개선 노력과 더불어 일본 경제계와의 기존 네트워크를 활용해 빨리 회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면서 “미중무역전쟁도 그렇지만, 이번 상황은 제로썸게임이 아닌 마이너스썸게임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번 교회를 반면교사 삼아서 우리 산업계의 실력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현실적으로 소재 국산화는 어렵다. 우리나라 반도체 수준이 상당히 높은데 그 수준에 맞출 부품이 순식간에 나오기 어려워, 지난 수십년간 부품 국산화 외쳤는데도 안됐다”면서 “그만큼 중소기업 생태계 자체 경쟁력이 낮은 것으로, 장기적 전략을 가져가되 당장은 한일 간 관계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실장은 “국내 기업들은 ‘일본 입장에서도 한국 기업이 중요한 파트너이므로 쉽게 이런 결정 안할 것이다’라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면서 “굉장히 정치적 이유에서 시작된 제재이므로 제재 범위 확산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영향을 받는 국내의 반도체, TV 산업은 전체 산업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향후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당장은 일부 재고가 있을 수 있지만 2~3개월 뒤에는 여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양 정부 간 빠른 해결 없이는 기업들의 제품 생산은 물론 경제 전체 부작용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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