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회담은 ‘꽤 괜찮은 쇼’였다[동아 시론/안드레이 란코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無계획-돌발성 강조한 3자 만남, 한계 있지만 한반도 위기시계 멈춰
재개될 실무회담은 현실 직시 필요…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 교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 교수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이뤄진 미국과 북한의 3차 정상회담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치 쇼(show)’만큼 좋은 단어가 없다. 정치 쇼는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이번 판문점의 정치 쇼는 한반도 문제 관리에 기여한 것이었다. 쇼이긴 하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할 이유가 있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 지도자는 이 정상회담이 거의 우연히 성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말을 믿는다면, 트럼프는 서울을 방문했을 때 마음에 든 친구가 멀지 않은 곳에 산다는 것을 기억해 내자마자 그 친구, 즉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SNS와 전화로 연락해 잠깐 만나자고 한 것이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판문점까지 온 것이다.

당연히 사전 계획이 전혀 없었던 상봉이라는 말은 믿기 어렵다. 초강대국의 대통령은 어느 도시를 방문해 그곳의 지인에게 문득 만나자고 연락하는 여행자처럼 행동할 수 없다. 이미 지난달 25, 26일경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미 회동이 성사될 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사전에 알려진 것을 감안하면 판문점 회동은 급하게 준비한 것이기는 하지만 당사자들의 주장만큼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따라서 우리는 왜 그들이 통상적인 정상회담 대신에 ‘돌연한 회동’으로 위장한 정치 쇼를 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판문점 회동은 상징성, 분위기, 제스처와 돌연성을 많이 강조하는데, 구체성은 거의 없었다. 이것은 돌연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현 상황에서 세 지도자 모두 국내 정치 때문에 그럴듯한 외교 성과를 필요로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유권자에게 자신의 외교 능력을 보여줘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는 어렵고 총선은 다가오는 상황에서 국민에게 대북정책이란 비장의 카드를 다시 꺼낼 필요가 있었다. 흥미롭게도 여러 소식통에 의하면 김 위원장도 북한 내부에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하노이 결렬 이후 북한 엘리트 계층 내부에서 “김 위원장은 미국에 속았고 그의 외교에 대해 불만을 느낀 사람이 많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돈다. 이 때문에 그도 내부에 보여줄 외교 성과가 필요했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는 단순히 자신의 정치 이익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 지도자는 외교를 통해 북핵 문제를 관리하고 해결할 의지가 분명 있다. 물론 그들이 각자 희망하는 타협은 매우 다르다. 김 위원장은 핵 군축 혹은 핵 동결을 수용할 수도 있지만 머릿속에 ‘핵 포기’는 전혀 없다. 회담으로 타협을 이룰 생각도 있지만 동시에 시간을 벌려는 목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룰 수 없는 비핵화의 꿈을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비핵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주장할 ‘핵 군축’에 관심이 커지는 것 같다. 한편 문 대통령은 현재와 같은 교착 상황이 지속되면 2017년처럼 한반도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감을 가짐과 동시에 지금의 교착 상태 때문에 남북관계가 진전하지 못하는 것을 바라지 않아 어떤 타협이든 수용할 수 있어 보인다. 따라서 세 지도자 모두 외교 협상을 지속할 의지가 있다.

문제는 하노이 노딜 이후 통상적인 정상회담을 다시 연다면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도 구체적인 합의와 진전을 도출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짧은 기간 안에 복잡한 합의를 준비할 가능성은 없었다.

그 때문에 판문점 회동이 필요했다. 사전 계획이 전혀 없었던 회담이라면 아무런 구체적 성과가 없어도 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러한 회담으로 북-미 양측은 여전히 북핵 문제를 외교로 해결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었다. 그래서 판문점 회동을 ‘제법 쓸모 있는 쇼’로 볼 수 있다. 최근까지 한반도의 상황은 2017년과 같은 위기의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조짐도 보였다. 이를 감안하면 회동 자체는 정치 쇼이기는 했지만 위기로 가는 상황을 멈추게 만들었다.

다만 곧 시작될 실무회담에 대해서는 기대를 하는 편보다는 현실적 평가를 하는 편이 낫다. 북한은 비핵화를 수용할 의사가 전혀 없다. 체제 안전 보장 약속이나 다른 관대한 보상, 대북 제재 해제를 제안해도 그들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외교 때문에 각국은 여전히 비핵화를 이야기하겠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비핵화 외교의 목적은 북핵 문제 ‘해결’이 아니라 북핵 문제 ‘관리’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핵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 교수
#판문점 회담#북미 정상회담#북한 비핵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