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데 공감능력은 중요하다. 상대의 생각이나 기분, 상황이나 아픔에 공감한다는 것은 대화와 소통을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 화가 브리튼 리비에르는 교감과 공감이란 주제를 표현하는데 탁월했다.
화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이어 4대째 화가가 됐고 그의 아내 역시 화가였다. 열두 살 때부터 전시를 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인물이나 풍경도 그렸지만 사람과 함께 있는 반려동물을 가장 많이 그렸다. 특히 섬세한 표정과 몸짓으로 주인과 교감하는 반려견 그림으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중 이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화면에는 파란 드레스를 입은 어린 소녀와 하얀 개가 등장한다. 실내 계단에 앉아있는 소녀는 엄마에게 야단이라도 맞은 건지 무척 우울해 보인다. 옆에 앉은 개는 위로하듯 소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그림 속 모델은 화가의 딸 밀리센트로 꾸지람을 들은 후 ‘반성 계단’에 앉아 벌을 받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소녀의 눈빛에선 반성보다는 억울함과 슬픔이 더 커 보인다.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속상하고 외롭다는 표정이다. 소녀의 마음을 알아채고 위로를 건네는 건 오직 반려견 뿐이다. 화가는 야단을 맞고 골이 난 딸아이의 모습을 잘 기억해 뒀다가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친구처럼 서로 교감하는 어린 소녀와 개의 사랑스런 모습은 보는 이들을 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
1878년 이 그림이 런던 왕립예술원에 처음 전시됐을 때 평론가들의 찬사는 엄청났다. 저명한 평론가 존 러스킨은 지금까지 자신이 봐왔던 왕립예술원 작품들 중 ‘최고의 그림’이라고 치켜세웠고, 각종 신문과 잡지들도 앞 다퉈 호평을 쏟아냈다. 인기를 증명하듯 복제화 주문이 줄을 이었고, 리비에르는 자신의 그림을 수백 점 이상 모사해야 했다. 서로 말은 안 통해도 교감하고 소통하는 아이와 개의 모습은 어른들에게도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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