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가수 유승준씨(43)에 대한 비자발급 거부가 위법했다고 판결한 것은 법무부의 입국금지 결정이 행정조직 내부에서만 효력이 있는 ‘지시’이지 ‘처분’이 아니라는 판단이 전제가 됐다.
이를 두고 학계 일각에서 유씨에 대한 법무부의 입국금지 결정을 처분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대법원이 이를 지시로 판단한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유씨는 2002년 1월18일 미국에서 시민권 취득선서를 하고 현지 한국총영사관에 국적 포기를 알렸다. 병역기피 비난여론이 일자 법무부장관은 2002년 2월1일 유씨 입국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린 뒤 이튿날 오전 공항에서 유씨 귀국을 막았다.
학계 일각에선 법무부장관이 입국금지를 결정하고 다음날 유씨 입국을 막은 행위를 행정처분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지시가 아닌 행정처분이어야 처분을 받는 당사자인 개인에게 구속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1,2심은 입국금지결정이 처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이 사건 입국금지 결정은 처분이 아니라서 비자발급 거부가 위법하다고 하급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도 입국금지 결정이 요건을 갖추면 ‘처분’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유씨 사례에선 “법무부장관 의사가 공식적 방법으로 외부에 표시된 게 아니라 단지 그 정보를 내부전산망인 ‘출입국관리정보시스템’에 입력해 관리한 것에 지나지 않아 항고소송 대상이 될 수 있는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행정소송법상 처분이 되려면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 공권력 행사 또는 그 거부와 그밖에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이 있어야 한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학계에서도 이같은 대법원 판례에 법리해석상 모순은 없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신봉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씨가 국적을 포기해 한국에 들어오려면 비자를 받아야 하는 외국인 신분이어서, 법무부가 공항에서 유씨 입국을 제재한 행위는 법적행위인 처분이 아닌 법무부 공무원이 행하는 권력적 사실행위라고 풀이했다.
입국금지 결정과 무관하게 비자 없이 들어오려는 외국인을 공권력을 행사해 막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신 교수는 “법무부장관의 입국금지 결정을 토대로 입국장에 (유씨가 포함된) 입국금지자 명단 목록이 전산으로 전달된 정도는 지시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내부적으로 (행정청이) 판단기준을 갖고 있던 건 행정처분이 아닌 것”이라고 했다.
또 “근본적으로 비자발급 문제가 생기지 않는 국민의 경우 입출국 금지 결정은 취소를 소송으로 다툴 수 있는 처분 성격을 갖는데, 외국인은 비자발급 거부행위와 입국금지결정이라는 2개 행위가 존재하고 입국금지결정은 처분으로 볼 수 없다”고 부연했다.
이재화 법무법인 향법 변호사도 “법무부는 내부적으로 영사관에 ‘유권해석’을 해준 것”이라며 “입국금지 결정에 따라 영사관이 사증발급을 거부한 건 행정청의 내부적 결정과정이라 지시이고, 공항에서 유씨 입국을 막은 건 사실행위”라고 말했다.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출신 박태준 변호사는 행정소송법상 처분의 정의를 들어 대법원 판단에 힘을 실었다.
박 변호사는 “법무부가 입국금지 통보를 처분 상대방에 보냈다면 당연히 처분이 된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아 행정청 내부 지시사항에 그칠 것 같다”며 “처분은 원칙적으로 서면으로 해야 하고, 구두로 하려면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법무부가 공항에서 유씨 입국을 막은 사실 자체만으로 ‘묵시적 통보’가 성립해 처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이는 기존 입국금지 결정에 따른 사실상의 공권력 행사라, 헌법소원 대상이 될지는 따져봐야 하겠지만 처분성은 인정이 안될 것 같다”고 봤다.
다만 신 교수는 “유씨의 병역면탈을 근거로 해 입국금지 결정을 한 행위를 행정처분 성격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겠다”며 학계에서 논란의 여지는 있을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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