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시간 이용해 부수입 ‘쏠쏠’”…4차 산업혁명 시대에 뜨는 ‘틈새 알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일 16시 12분


나는 ‘4차 산업혁명 알바생’이다. 사무실도 없고, 상사도 부하 직원도 없다. 마음 내킬 때 하루에 1시간 일할 수도 있다. 돈(시급)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너머 어딘가에 있는 회사에서 준다.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신종 서비스들이 출현하면서 틈새 아르바이트(알바) 종사자가 늘고 있다. 제조기업 영업맨이었던 40대 남성은 쉬는 날 쿠팡 물품을 배달하는 일을 하다 아예 회사를 관두고 이 일을 직업으로 바꿨다. 빵집이나 카페 알바를 하던 23세 여대생은 이제 공강 시간에 앱으로 연결된 아이들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일을 한다. ICT 서비스가 ‘소소한 알바’이자 ‘투잡’의 새로운 노동 생태계를 창출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①쿠팡 자차 배달 ‘쿠팡 플렉스’ ②유아 돌봄·교육 서비스 앱 ‘자란다’ ③심부름 앱 ‘애니맨’ ④쏘카 차량을 특정 장소로 탁송해 주는 ‘쏘카 핸들러’ 등 총 4개 서비스를 일터로 두고 있는 이들을 취재했다. 서비스에 따라 현장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직접 체험해 보기도 했다. 손가락 하나로 닿을 수 있는 스마트폰 앱 뒤편에 많은 이들의 땀이 있었다.

#1. “애들 학원비라도 벌 겸 한번 해봤죠. ‘전업으로 뛰면 월 500은 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해 연봉 4000만 원을 받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으로 ‘쿠팡 플렉스’ 알바를 뛰는 유심걸 씨(49). 동아일보DB
지난해 연봉 4000만 원을 받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으로 ‘쿠팡 플렉스’ 알바를 뛰는 유심걸 씨(49). 동아일보DB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물류센터에서 만난 유심걸 씨(49)는 반팔 티셔츠에 캡 모자 차림이었다. 자신의 흰색 승합차 트렁크에 ‘로켓배송’이라 적힌 상자를 두 개째 싣고 있었다. 유 씨는 쿠팡 배송 물품을 자신의 차로 배달하는 쿠팡 플렉스 알바를 한다.

작년까지 유 씨는 가구회사 전략영업팀에서 일했다. 연봉도 4000만 원이 넘었다. 두 아이의 학원비와 주택자금 대출 이자 부담에 투잡을 찾으려고 채용정보 사이트를 뒤지다 쿠팡 플렉스를 알게 됐다. 7월 한 달간 휴가, 주말, 자투리 시간 동안 배달을 했더니 280만 원이 통장에 들어왔다. 아예 한 달 내내 쿠팡 플렉스 일만 하면 월 500만 원은 벌겠다는 계산이 섰다. 1년 알바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으로 하기 시작했다.

쿠팡 플렉스는 사전에 쿠팡 시스템에 본인 정보를 등록하고 희망 물류 지역을 제출한 뒤 전날 원하는 배송 건수를 신청하게 돼 있다. 승인이 되면 다음 날 쿠팡 물류센터에서 할당된 물품을 실어 배달하고 사진으로 인증하면 된다. 배송 단가는 상자 하나당 최저 750원. 그날그날의 배송 인력과 배달 건수에 따라 많게는 1000원 이상을 받기도 한다.

전과 달리 유 씨는 출근 시간이나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다. 출근하는 아내 대신 두 아이를 등교시키고 집안일을 한 뒤 오후 1시까지 물류센터에 도착한다. 이제 숙달이 돼 출근 후 물건 싣는 시간을 제외하면 60상자를 배달하는 데 1시간이면 끝난다. 그렇게 하루 150상자를 배송하면 퇴근이다. 유 씨는 “주 6일 유연하게 근무하고 일요일은 아이들과 보낸다”며 “얼마나 일하고, 언제 하고, 얼마까지 벌지를 자기가 정하기 나름이라는 게 이 일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2. “카페 아르바이트처럼 반나절 꼬박 하지 않아도 되고, 시험 기간에도 일할 수 있어요.”

‘자란다 앱’을 통해 평소 좋아하던 아이돌봄 알바를 하고 있는 문여진 씨(23). 동아일보DB
‘자란다 앱’을 통해 평소 좋아하던 아이돌봄 알바를 하고 있는 문여진 씨(23). 동아일보DB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에선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이 수업 외 시간에 베이비시터 알바를 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선 베이비시터가 전업 가사노동으로, 주로 5060세대 ‘이모님’들의 몫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아이의 하원과 부모의 퇴근 사이만 메우는 시간제 시터 수요가 늘었고, 이 시장에 ‘육아 매칭 앱’을 통해 20대 청년들이 뛰어들고 있다.

인하대 아동심리학과 4학년 문여진 씨(23·여)는 작년부터 5~7세 아이들과 놀아주는 알바를 하고 있다. 아이 보육·교육 연결 서비스 ‘자란다’ 앱을 알게 된 건 학과 카카오톡 채팅방이었다. 시간이 맞을 때마다 1~3시간씩 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평소에 좋아했던 아이 돌보기를 하면서 용돈도 벌 수 있어 기존에 하던 카페 알바보다 만족도가 높다. 문 씨는 “이젠 학교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자란다 수업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다른 알바에 비해 자부심도 크다. 일단 일하기 위한 등록 절차가 까다롭지만 짧은 시간에 ‘모든 걸 쏟아서’ 아이들을 돌보다 보니 부모들에게 호평을 받고 보람도 있다는 것이다. 자란다 선생님이 되기 위해선 대학생이거나 교육 관련 경력 혹은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자기소개서 제출, 인성 면접을 거친 뒤 수업 매너와 연령별 특성 등 교육을 받아야 최종 선발된다. 문 씨는 “가사 일은 하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만 하지만 최선을 다해 아이들과 놀아주는 모습에 만족한 부모님들의 서비스 신청이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앱을 통해 생긴 일자리인 만큼 ‘대면 부담’이 작다는 것도 장점이다. 일반적인 과외나 알바를 구할 때 학부모나 사장과 시급, 근무일 등을 조율해야 하는 반면 자란다의 경우 그때그때 매칭 되는 가정에 가서 돌봄만 하면 된다. 문 씨는 “학업과 병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알바 때 행정적인 부분들은 회사(자란다)에서 모두 전담해 주니 대학생 틈새 알바로는 최적”이라고 말했다.

#3. “고시원 운영하다 남는 시간엔 만능 심부름맨 ‘헬퍼’로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며  심부름 중계 앱 ‘애니맨’을 통해 가구조립 등의 대행 알바를 하는 이상엽 씨(45). 동아일보DB
서울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며 심부름 중계 앱 ‘애니맨’을 통해 가구조립 등의 대행 알바를 하는 이상엽 씨(45). 동아일보DB
지난달 22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애니맨 교육 장소에서 만난 이상엽 씨(45)는 체격이 다부졌다. 실톱으로 합판을 자르고 전동 드릴을 쓰는 몸짓이 익숙해 보였다. 심부름 중개 앱 애니맨에서 ‘헬퍼’로 일한 지 3년째다.

정식 헬퍼가 되기 위해선 사진과 함께 간단한 신상 정보를 등록하고 범죄 경력 확인 등의 과정을 거친다. 애니맨 이용자들이 앱을 통해 갖가지 ‘미션’을 요청하면 내용을 보고 헬퍼들이 단가 입찰에 나선다. 이용자가 입찰된 단가와 헬퍼의 경력, 기존 평가 등을 감안해 헬퍼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2016년 창업한 애니맨의 현재 헬퍼 수는 4만명이다. 이 중 대학생(27%), 서비스·영업직(19%), 프리랜서(17%) 등 본업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씨의 경우도 투잡이다. 고시원을 운영하면서 남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다가 애니맨을 알게 됐다. 이 씨는 “하루에 한두 건 하는데 보통 건당 2만, 3만 원이고 어려운 가구 조립의 경우 10만 원까지도 받으니 부업으로 훌륭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월 100만 원을 찍은 적도 있다.

얼굴을 보지 않고, 종류를 가리지 않고 원하는 일을 ‘발주’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별별 일들을 다 하게 된다. 가구 조립은 흔한 미션이고 설거지나 김장, 대신 줄서기도 미션으로 자주 뜬다. 이 씨는 심지어 바퀴벌레를 잡아주러 간 적도 있다. 이 씨는 “바퀴벌레가 있어서 집에 못 들어가고 있다고 울먹거리는 이용자가 있었다”며 “간단한 일들이지만 누군가에겐 그 순간 절실한 것이다 보니 이용자들도 고마움을 많이 표현한다. 단순한 계약 관계인 직업들과는 또 다른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애니맨은 누적 미션 요청 16만건을 기록 중이다. 애니맨 측은 “미션 종류의 제약이 없고 이용자와 헬퍼 간 연계·중재 역할을 대신 해준다는 장점에 더해 최근엔 헬퍼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미션별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4. “집이 인천이고 직장이 서울이라 출퇴근길 시간만 투자하면 부수입을 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쏘카 차량을 원 차고지로 이동해주는 ‘쏘카 핸들러’ 서비스. 동아일보DB
쏘카 차량을 원 차고지로 이동해주는 ‘쏘카 핸들러’ 서비스. 동아일보DB
쏘카 핸들러 공식 커뮤니티의 한 회원은 돈을 벌며 출퇴근한다고 했다. 핸들러는 앱에 등록한 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쏘카 차량을 정해진 위치로 가져다주고 건당 1만 원 내외의 보상을 받는 알바다. 경로를 보고 맘에 드는 건을 선택할 수가 있어 출근길 집 근처에서 픽업해 직장 근처로 반납하는 것도 가능하다.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현재 약 3만 명이 핸들러로 등록돼 있다. 대리운전 종사자들의 부업으로도 인기가 높다.

실제로 지난달 19일 경기 성남시 분당 일대에서 핸들러를 체험해봤다. 가입에 필요한 개인정보는 운전면허 번호와 사진 등 쏘카 운행에 필요한 정보와 비슷했다. 가입 승인은 하루 만에 완료됐다.

서현역에 도착해 역 인근 쏘카존의 차량을 예약했다. 쏘카존까지는 도보로 5분이 소요됐다. 운행 전 3분의 검차 과정을 거쳤다. 차량 손상이나 오염을 확인해 촬영하고 앱에 올렸다. 운행 목적지까지는 약 20분이 소요됐다. 목적지에 차량을 주차하고 주유량, 내부 청소 상태, 외부 상태를 사진으로 인증하자 ‘운행 종료’ 메시지가 떴다. 차량 예약부터 운행 완료까지 4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핸들러 업무는 대인 스트레스가 없다. 핸들러 가입과 차량 예약, 운행 과정 모두 앱 하나로 가능했다. 대리운전 커뮤니티 ‘새벽을 달리는 사람들’의 한 회원은 “비대면이라 부스스하게 가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떡 진 머리로 후드 뒤집어쓰고 (전동) 휠을 타고 나갔다”고 후기를 남겼다.

핸들러는 주로 대리운전 종사자들의 부업 수단이기도 하다. 네이버 카페에 ‘핸들러’를 검색해 나온 후기 10개 중 8개가 대리운전 커뮤니티 글이었다. 대리운전 종사자들이 야간 운행 후 복귀 때 경로가 맞으면 쏘카 차를 타고 돌아가면서 부수입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리운전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이런 꿀팁이 뜬다고 한다. “경기 수원 망포동에서 대리(운전 콜) 잡고 들어가서 핸들러로 동탄역까지 빠져나올 수 있으니 참고하시라~.”

곽도영 now@donga.com·김재형 기자
박종민 인턴기자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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